≪마조어록29≫ 아무 걱정 말고 자신을 믿으라!

선향지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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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마조어록29≫ 아무 걱정말고 자신을 믿으라!


"늑담유건 스님이 하루는 법당 뒤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마조가 이를 보고 유건의 귀에 두 차례 입김을 불어넣었다.
유건은 선정에서 일어나 마조임을 알고는 다시 선정에 들었다.


마조는 방장실로 돌아가 시자(侍者)를 시켜 차 한 잔을 가져다주게 하였다.
유건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큰 방으로 가버렸다."

[마조어록]


스님의 강설


최근 이혼이나 질병 등과 같은 인생의 큰 위기를 맞고 힘들어하시는 몇몇 분들의 사례를 접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인생에서 몇 번의 큰 위기나 고비를 맞게 된다. 이혼도 그러한 일들 중 하나이며, 질병이나 퇴직, 사건 사고와 같은 일들도 그와 같다.

한 발 떨어져서 넓게 보면, 누구나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다 알고는 계신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일들을 직접 만나고 보면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내 머릿속에서 치성하는 생각들 때문에 더 괴롭게 된다.


인생의 모든 일들은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일이다. 사실은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뿐이다. 인연 따라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으며, 인연 따라 비도 내려야 한다. 


인생은 본래 내가 뜻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뜻하는 대로 되는 인생이 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우리 인생에는 행복만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다 한 생각일 뿐이다.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행복한 일도 불행한 일도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일이다.

화창한 날이 있으면 비 오는 날도 있는 것처럼, 인생에도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 인생에는 좋은 일만 있어야 하고 싫은 일은 생기면 안 된다는 그 생각이 바로 자기가 자기 마음으로 만든 망상이며 분별이다. 그 생각을 믿지만 않으면 된다.

세상 일들은 이렇게 그냥 인연 따라 일어난다. 여기에 내가 개입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내가 이 세상을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다 하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다. 그러나 내 뜻대로 절대 안돼! 하고 생각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망상이다. 우리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만, 결과는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곧 중도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 분별의 눈으로 보면 좋은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며, 괴로운 일도 있고 행복한 일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분별지의 지혜의 눈으로 본다면, 그냥 인연 따라 어떠한 일들이 일어난 것일 뿐이다. 그냥 그러할 뿐이다. 살다 보면 결혼이라는 일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이혼이라는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저 그 뿐이다.

즉, 힘든 일이 일어났을 때,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내 앞에 왔다면, 그 일은 그저 감당해내면 된다. 실은 모두 감당해내게 되어 있는 일들이다. 그저 와야 할 일이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에는 진리의 일이 그저 인연 따라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내 인생을 뒤바꿀 만큼의 큰일들이 올지라도, 심지어 최악의 일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내가 죽는 일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생에 생로병사가 오는 것, 그것이 바로 진리이다. 이 일들이 결코 괴로운 일이 아니다. 괴롭다는 그 한 생각만 믿지 않으면 된다. 그 생각에 끌려가지 말고 그저 담담히 그 일들을 감당해 내면 된다. 감당해 내야 할 일이기에 내 앞으로 찾아온 일이니까.

“큰 괴로움이 왔을 때는, 그 괴로움을 감당하라. 즐거운 마음으로 온전히 감당하라. 혹 즐겁지는 않더라도 그 괴로움이 곧 진리로 온 일임을 인정하고 지혜롭게 감당하라. 


그러할 때 우리 앞에 어떠한 일이 닥쳐오더라도 그저 의연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그 지혜로운 마음으로 우리는 어떤 일이든 다 감당할 수 있다. 온전히 다 감당해 내면서도 그저 가벼울 수 있다.”



이제 마조어록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늑담유건 스님이 하루는 법당 뒤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마조가 이를 보고 유건의 귀에 두 차례 입김을 불어넣었다. 유건은 선정에서 일어나 마조임을 알고는 다시 선정에 들었다.

마조는 방장실로 돌아가 시자(侍者)를 시켜 차 한 잔을 가져다주게 하였다. 유건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큰 방으로 가버렸다.
[마조어록]

***
굳이 이 내용을 따라가며 해석을 해 보자면, 법당 뒤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늑담유건을 보고는 마조스님께서 법을 시험해 보고자 하여 유건의 귀에 입김을 불어 넣어 보았다 할 수 있겠다. 시자를 시켜 차를 한 잔 갖다 준 것 또한 같은 일일 것이다.

이러한 마조스님의 행에 개의치 않고 다시 선정에 들거나, 시자가 가져온 차를 쳐다보지도 않고 큰 방으로 가버린 유건스님의 행동들 또한 있는 그대로 법을 드러내고 있다 할 수 있다. 굳이 해석을 붙여 보자면 이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 글을 읽고서 글의 내용을 따라가며 해석을 하려고 한다면 이미 법과는 어긋났다.

이 글을 몇 번이고 읽었더라도, 그 글의 내용에 원초적으로 따라가지 말고, 생각도 굴리지 말아보라. 


그냥 여기서 ‘늑담...’하고 말을 할 때, 지금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늑...담...’이라고 하거나, (죽비를 딱! 치시며) 이 죽비 소리를 들으나... 듣는 즉시 지금 여기에서 한결같이 확인되는 것이 딱 하나가 있지 않은가?

이 글의 내용을 판단하고 해석하려는 것이 이 공부의 본래 목적이 아니다. 늑담유건 스님과 마조스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가를 해석하는 일이 주가 아니라, 곧장 이 글이 나의 현성 공안이 되어야 한다. 

유건스님의 일이 아니라, 듣는 즉시 곧장 나의 일이 되어야 한다. 내 살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법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앉아 좌선을 하든, 하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다. 깨달은 자들에게는 그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다. 그저 매사에 자유로운 것이다.

여러분들 또한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한번 바라보라. 당장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생각만 해 봐도 신기하지 않은가? 집을 찾아 가기 위해 일부러 왼발 오른발을 작정하고 내딛고 있지도 않고, 왼팔 오른팔을 굳이 순서대로 신경 써서 흔들고 있지도 않은데도, 신기하게 내 몸은 알아서 움직여 주며 나를 집을 향해 가도록 해 주지 않는가 말이다. 


'이것을 몸이 하고 있는가? 마음이 하고 있는가?' 하며 머리로 답을 내려 할 것이 아니라,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항상 놓지 말고 있어보라.

길을 가며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하늘과 바라보고 있는 내과 둘이 아닌 하나임을 분별없이 온전히 자각하게 될 때, 또한 아름다운 음악을 심취하여 듣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멎고 그 음악과 내가 하나됨을 느끼게 될 때, 온 우주 전체가 둘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일임을 깨닫게 될 때... 그러할 때 이 모든 일이 비로소 ‘나의 일’이 된다.

그것이 곧 이 본래 근원의 자리의 일임을 알기만 하면 된다.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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