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을 원했는데 낙선이 오는 이유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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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03-13 23:14
‘집착 없이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집착하지 않으면서 원하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집착을 내려놓는 ‘척’을 한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집착을 내려놓으면 이루어지겠지라고 하는 또 다른 집착이다.
글 감사합니다❤️
인간은 생각이 많기에, 소망이 실현되는 것도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에게 별을 보여 주며, 그만큼 자손을 주겠다고 하느님이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자식 하나 없었는데요
아브라함 나이가 75세 즈음이었고, 아내인 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비현실적이라며 믿지 않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럼에도 약속은 참 천천히 이루어주셔서, 결국 100살 때 하느님이 말씀하신 아들을 보게 하는데요
아브라함이 85세 즈음, 아브라함도 그랬을 것이고
아내 또한 자격지심으로 그녀의 하녀에게서 아들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은 그 아들은 아니라고 부정하시며, 결국 아브라함이 100살이 될 때 생리까지 끊긴 아내에게서 아들을 낳게 하시죠
결국, 조급함으로 하녀로부터 얻은 아들은 아랍계의 시조가 되고
아내에게서 낳은 아들 이삭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됩니다
말씀을 어기고 두 아들을 얻게 되었지만, 하느님은 두 아들의 자손 모두에게 부의 번영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복과 번영을 약속하셨으니까요
그 말씀대로 아랍은 석유 산유국으로, 또 유대인은 그들대로 부를 향유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하느님의 약속을 굳건히 믿지 않음으로 생긴 아들로 인해
결국 지금 아랍 지역의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장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아랍민족과 내가 진짜 적자라 주장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갈등이 현시대에 재현되는 것도 참 신기합니다
100살에 얻은 아들마저 재물로 바칠만큼 굳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의 자손답게, 아랍민족들의 신앙심은 정말 누구도 못말리는 과격함이 있는데요
아랍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모두 같은 여호와를 하느님으로 경배한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결국,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조급해하지 말고 굳게 믿고 기다려라
하느님의 약속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입니다
그래서 집착을 내려놓는 ‘척’을 한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집착을 내려놓으면 이루어지겠지라고 하는 또 다른 집착이다.
글 감사합니다❤️
인간은 생각이 많기에, 소망이 실현되는 것도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에게 별을 보여 주며, 그만큼 자손을 주겠다고 하느님이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자식 하나 없었는데요
아브라함 나이가 75세 즈음이었고, 아내인 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비현실적이라며 믿지 않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럼에도 약속은 참 천천히 이루어주셔서, 결국 100살 때 하느님이 말씀하신 아들을 보게 하는데요
아브라함이 85세 즈음, 아브라함도 그랬을 것이고
아내 또한 자격지심으로 그녀의 하녀에게서 아들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은 그 아들은 아니라고 부정하시며, 결국 아브라함이 100살이 될 때 생리까지 끊긴 아내에게서 아들을 낳게 하시죠
결국, 조급함으로 하녀로부터 얻은 아들은 아랍계의 시조가 되고
아내에게서 낳은 아들 이삭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됩니다
말씀을 어기고 두 아들을 얻게 되었지만, 하느님은 두 아들의 자손 모두에게 부의 번영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복과 번영을 약속하셨으니까요
그 말씀대로 아랍은 석유 산유국으로, 또 유대인은 그들대로 부를 향유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하느님의 약속을 굳건히 믿지 않음으로 생긴 아들로 인해
결국 지금 아랍 지역의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장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아랍민족과 내가 진짜 적자라 주장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갈등이 현시대에 재현되는 것도 참 신기합니다
100살에 얻은 아들마저 재물로 바칠만큼 굳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의 자손답게, 아랍민족들의 신앙심은 정말 누구도 못말리는 과격함이 있는데요
아랍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모두 같은 여호와를 하느님으로 경배한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결국,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조급해하지 말고 굳게 믿고 기다려라
하느님의 약속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입니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진급되기를’ 하고 간절히 원한다고 해보자. ‘진급 성취 발원’ 하며 기도를 한다. 그러나 진급을 원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집착이 붙게 되면 ‘진급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함께 커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 진급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진급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연습하게 된다.
진급을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연습하게 되면, 우주는 계속해서 두려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창조해 낼 것이다. 계속 두려워지려면 진급에서 떨어져야 한다. 그러니 진급에 대해 크게 집착하면 할수록 ‘진급 떨어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연습되어 결과적으로 진급에서 떨어지는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집착 없이 단순히 진급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힘을 받을 것이다. 집착 없이 원한다는 말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급이 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좋다는 마음의 여유로운 태도를 의미한다. 이런 마음은 결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그렇기에 두려움과 불안이 없게 되고 진급 낙방에 대한 마음보다는 진급 그 자체를 연습하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집착 없이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집착하지 않으면서 원하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집착을 내려놓는 ‘척’을 한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집착을 내려놓으면 이루어지겠지라고 하는 또 다른 집착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