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가 곧 보리
2025-11-03
조회수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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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송아지2025-11-03 16:50
좀 알 거 같아요
대략 번뇌를 번뇌라고 이름 짓지 않으면 되는 거죠? ㅎㅎㅎ;;;;;;
번뇌와 보리는 한세트
번뇌를 나타내기 위해 보리를 만들고
보리를 느끼려면 번뇌를 알아야 함
시험을 쳐야 학생들이 공부를 하듯이
번뇌가 있어야 사람들이 공부를 한다는 말을 어디서 보았던 거 같아욤
짜잔
그리고 이건 도자캣 !!
청자캣이래요 ㅎㅎ
짱 귀엽죠 ?
대략 번뇌를 번뇌라고 이름 짓지 않으면 되는 거죠? ㅎㅎㅎ;;;;;;
번뇌와 보리는 한세트
번뇌를 나타내기 위해 보리를 만들고
보리를 느끼려면 번뇌를 알아야 함
시험을 쳐야 학생들이 공부를 하듯이
번뇌가 있어야 사람들이 공부를 한다는 말을 어디서 보았던 거 같아욤
짜잔
그리고 이건 도자캣 !!
청자캣이래요 ㅎㅎ
짱 귀엽죠 ?




번뇌가 곧 보리이며,
마음이 없으면 바로 경계도 없다.
생사는 열반과 다르지 않고,
탐냄과 성냄은 불꽃같고 그림자 같다.
진리의 몸은 자재하여 정해진 곳이 없으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바른 깨달음 아닌 것이 없다.
할 일 없는 대도(大道)는 스스로 그러하니,
마음을 가지고 나누고 헤아릴 필요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알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서방정토에 가기를 좋아한다.
문자의 속을 알지 못하고 뜻을 취한다면,
어느 때에 참되고 영원한 진리를 알 수 있겠는가?
[지공화상 불이송]
성문(聲聞)은 소승불교의 수행자로써, 아직 원만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어리석은 수행자를 의미한다.
성문승(聲聞乘)이 시끄러움을 싫어하고 고요함만을 구하려 하는 것이 마치 밀가루라는 본래면목은 내버리고, 겉모습인 빵만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본래면목, 자성, 밀가루의 입장에서는 시끄러움도 자성이고, 고요함도 자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치 시끄러운 모양도 밀가루로 만들어내고, 고요한 모양도 밀가루로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빵은 본래 밀가루가 그 근본인데, 조작하고, 만들어내고, 차별된 모습을 만들려고 하면 사람에 따라 수백, 수천, 수만 가지로 만들 수 있다.
번뇌가 곧 보리다. 빵이 곧 밀가루다. 중생이 곧 부처다. 생사가 곧 열반이다. 파도가 곧 바다다. 그 근본은 다 똑같은 하나의 부처요, 하나의 불성이다.
밀가루와 빵과 비슷한 다른 비유를 들면, 불꽃과 불의 비유, 혹은 본체와 그림자의 비유를 들 수 있다. 불꽃은 온갖 모습으로 일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본성은 결국 하나의 불이다.
그림자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생겨나기도 하지만, 그 그림자의 본체인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림자가 작아졌다고 사람도 작아진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법신(法身)은 자재하여 정해진 곳이 없이, 온 우주에 두루 편만하다.
큰 도는 무위(無爲)이며 자연(自然)이다.
스스로 그러하며 할 일이 없다. 나누고 헤아리지만 않으면 그대로 무위자연이요, 큰 도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