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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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마다 다양한 꿈을 꾼다.


어떤 날은 악몽을 꾸고, 어떤 날은 행복한 꿈을 꾼다.


어떤 날은 성공적이고, 어떤 날은 실패의 연속이다.


어떤 날은 공포이며, 어떤 날은 최상이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이 모든 좋고 나쁜 꿈에 대해, 우리는 전혀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기왕이면 좋은 꿈을 꾸면 좋겠다고 가볍게 여길 수는 있어도, 그 꿈의 내용에 집착하거나, 특정한 꿈을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 꾸어야 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그건 그저 꿈일 뿐이기 때문이다.


꿈인 줄 아는 꿈 깬 자는 이처럼 꿈의 내용에 신경 쓰지 않는다.


실제로 꿈의 내용이 어떤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바로 지금 이 꿈 깬 세상도 그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아상과 에고의 입장에서는 '나'가 실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인생을 심각하게 계획하고,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특별한 욕망에 집착한다.


그러나 진실은, 무아다!


그런 '나' 자체가 허상이다.


그렇기에, 무아의 진실에 눈 뜨게 되면, 삶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


삶을 내가 원하는대로 통제하려고 집착하지 않는다.


원하는 삶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물론 좋은 꿈을 선호하듯, 좋은 삶을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에 대해서 과도하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다.


삶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꿈처럼, 사실은 이 현실이라는 망상의 꿈도 그 내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내용, 즉 내가 부자냐 가난하냐, 성공적이냐 실패한 인생이냐 등은 삶의 내용일 뿐이다.


그것은 존재의 핵심이 아니다.


그 내용물은 그저 왔다가는 허망한 것들일 뿐이다.


인연 따라 왔다 가는 것일 뿐, 실체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오고 가는 바탕, 올 때 오는 줄 알고 갈  때 가는 줄 알며, 좋은 때 좋을 줄 알고 나쁠 때 나쁠 줄 아는 이 텅 빈 있음의 자각,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본질이다.


이 자리에 있으면, 내용물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진다.


물론 그럼에도 삶은 열심히 산다. 집착 없이. 가볍게.


삶에 무엇이 와도 괜찮아진다.


온전히 받아들인다.


가볍고 자유롭다.


이것이 곧 해탈 아닌가!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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