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기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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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의 실천은 언뜻 보면 쉬울 것 같지만, 쉽지만은 않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의식은 곧 분별심이었기 때문이다. 


이 분별심을 불교에서는 식(識)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대상을 ‘아는 마음’이다. 


우리가 대상을 파악하여 알 때는 이 식, 의식을 통해서만 분별하여 알 수밖에 없다. 


식으로 대상을 보는 것 밖에는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중도에서는 식이라는 분별로 보지 말고, 분별 이전에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라고 설하고 있다. 


분별로 밖에 봐 본 적이 없는 중생에게 분별이 아닌 중도로 보라고 하니,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로 가라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의식, 식은 어떤 한 사람을 보고 ‘키가 크고, 잘생겼고, 능력 있고, 돈도 많아’ 하는 방식으로 인식한다. 


사실 여기에는 분별이 개입되어 있다. 비슷한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혹은 내 머릿속의 어떤 대상 그룹과 비교해 그렇다는 것이다. 


농구선수들 사이에서는 키가 작고, 더 능력 있고, 더 돈도 많은 사람 앞에서는 가난하게 인식된다. 


즉 우리가 대상을 판단할 때는 이처럼 비교해서, 분별해서 인식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을 둘로 나누어 놓고 비교를 해야만 한다. 


비교를 통해 그것이 큰지 작은지, 옳은지 그른지, 잘났는지 못났는지가 판단되는 것이다. 


 남자도 사실 여자라는 상대가 있을 때만 ‘남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밖에 없다면, ‘남자’니, ‘여자’니 하는 분별은 애초에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분별했을 때만 그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인식 구조다. 


그러나 그 분별인식은 허망하다. 진실하지 않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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