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의 씨앗을 본성의 땅에 심어 놓는다면

2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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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부를 하면, 분명한 공부의 효험이 생깁니다.

 

아직 깨닫지 못하였더라도, 이 공부를 꾸준히 하다보면, 점점 이 자리에 가까와지고, '그렇지' '그렇지' 하고 법문과 내 마음이 하나되는 공명을 경험하곤 합니다.

 

법문이 공감이 되고, 법문 듣는 순간이 평안하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특정 부분에서 이해가 안 되고 소화가 안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도 모르게 자꾸 이 법문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법비에 젖고, 법의 즐거움에 젖어들게 됩니다.

 

이렇게만 하신다면, 당장에 깨닫지 못하더라도, 큰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

 

대혜종고 스님도 수행자와 재가불자에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금생에 비록 깨닫지 못하더라도 반야의 씨앗을 본성의 땅에 심어 놓는다면, 세세생생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의 몸을 잃지 않고, 삿된 견해를 가진 집안에 태어나지 않고, 마구니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는, 깨닫고 못 깨닫고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못 깨달아도 본래불이고, 깨달아도 본래불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게 계속 법문을 듣고 있다면, 법문이 조금씩 들리면서 내 마음과 공명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흐름에 든 자' 즉 수다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흐름을 놓치지 말고, 이 법의 흐름, 법의 자리, 법문을 꾸준히 들으며, 그저 젖어들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저절로 수행이 됩니다.

 

법문 듣는 것이 그대로 가장 적절한 수행입니다.

 

분명한 법의 효능이 있습니다.

 

법약의 약효를 분명히 보게 됩니다.

 

그것이 작든 크든, 깨달음이 왔든 오지 않았든, 상관 없이 본래불이기에, 우리는 법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이미 본래자리와 하나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견성을 했어도, 퇴전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오로지 이 법과 함께 하겠노라는 발심, 법문을 늘 들으며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더욱 공부인에게는 중요합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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