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장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바로 지금 그대가 목숨을 내려놓을 곳이다."
[마조어록]
선사스님들께 진리의 자리를 물을 때 제자들은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하기도 하고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하기도 하며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떠나서 법을 보여 주십시오.” 하기도 한다.
당시 자주 쓰던, 법을 묻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묻는 몇몇 정형구들이 있다.
모두 진리를 구하는 질문이다.
그러한 진리를 묻는 질문에 마조는 ‘바로 지금 목숨을 내려놓을 곳’이라고 답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자기를 내세우며 ‘나’를 세우고 살아왔다.
몸과 마음, 이 오온을 ‘나’라고 여기면서 ‘나’를 내세우며 살아왔다.
이렇게 ‘나’를 세우면서 괴로움이 시작되었고 ‘나’를 세우면서 분별을 하기 시작했다.
이 가짜인 ‘나’를 죽여야만이 무아(無我)가 증득된다.
이 공부는 자기가 죽어야 하는 공부다.
심지어 이 마음공부를 할 때도 ‘내가 한다’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지만, 궁극에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
○
이 공부는 내가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사라지는 공부다.
생사해탈의 공부다. 불사(不死)의 길이다.
너무나 엄청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 같지만, 실로 자기를 버리는 자리, 나의 목숨을 내려놓을 자리가 곧 이 진리의 자리이며, 그렇게 목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본래의 자기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공부의 길이다.
실로 부처님의 근본 뜻이 무엇인가? 근본 뜻이라 할 만한, 쥘 만한 것이 하나 없다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진리일 뿐, 머무를 바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 근본 뜻은 머리로는 답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다’ 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속에서 숨은 뜻을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숨은 뜻이 따로 있다면 불이법이 아니지 않겠는가?
말로 근본 뜻을 드러내려 하지만, 그 말에도 붙잡히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스승들은 세우고 파하기를, 파주(把住)와 방행(放行)을 자재하게 쓰며 이 자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글쓴이:법상
백장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바로 지금 그대가 목숨을 내려놓을 곳이다."
[마조어록]
선사스님들께 진리의 자리를 물을 때 제자들은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하기도 하고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하기도 하며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떠나서 법을 보여 주십시오.” 하기도 한다.
당시 자주 쓰던, 법을 묻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묻는 몇몇 정형구들이 있다.
모두 진리를 구하는 질문이다.
그러한 진리를 묻는 질문에 마조는 ‘바로 지금 목숨을 내려놓을 곳’이라고 답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자기를 내세우며 ‘나’를 세우고 살아왔다.
몸과 마음, 이 오온을 ‘나’라고 여기면서 ‘나’를 내세우며 살아왔다.
이렇게 ‘나’를 세우면서 괴로움이 시작되었고 ‘나’를 세우면서 분별을 하기 시작했다.
이 가짜인 ‘나’를 죽여야만이 무아(無我)가 증득된다.
이 공부는 자기가 죽어야 하는 공부다.
심지어 이 마음공부를 할 때도 ‘내가 한다’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지만, 궁극에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
○
이 공부는 내가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사라지는 공부다.
생사해탈의 공부다. 불사(不死)의 길이다.
너무나 엄청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 같지만, 실로 자기를 버리는 자리, 나의 목숨을 내려놓을 자리가 곧 이 진리의 자리이며, 그렇게 목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본래의 자기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공부의 길이다.
실로 부처님의 근본 뜻이 무엇인가? 근본 뜻이라 할 만한, 쥘 만한 것이 하나 없다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진리일 뿐, 머무를 바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 근본 뜻은 머리로는 답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다’ 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속에서 숨은 뜻을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숨은 뜻이 따로 있다면 불이법이 아니지 않겠는가?
말로 근본 뜻을 드러내려 하지만, 그 말에도 붙잡히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스승들은 세우고 파하기를, 파주(把住)와 방행(放行)을 자재하게 쓰며 이 자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