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부의 근본은 머무는 바 없이 행하는 데 있습니다

202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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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법문은 무념(無念)을 종(宗, 으뜸)으로 삼고, 무상(無相)을 체(體, 바탕)로 삼고, 무주(無住)를 본(本, 뿌리)으로 삼습니다. 무상은 모습에서 모습을 벗어나는 것이며, 무념은 생각을 하지만 생각이 없는 것이고, 무주는 사람의 본성을 말합니다.


[육조단경]


무주(無住)는 어디에도 머물러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이 공부의 근본은 머무는 바 없이 행하는 데 있다. 


『금강경』에서도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 하여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고 했다. 


머문다는 것은 곧 집착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어떤 한 가지 대상에 머물게 되면, 그 대상에 사로잡히고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세간의 온갖 분별들이 전부 공한 줄 알면 그 어디에도 머물러 집착하지 않는다. 


무아(無我)인 줄 알아 어떤 것도 집착할 만한 실체가 없으며, 연기(緣起)를 알아 모든 것은 다만 인연 따라 잠시 생겨났다가 사라질 뿐임을 깨닫는다면, 어디에도 머물러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과 싸우고 부딪히고 속이고 다툴 때에도 그것이 공한 줄을 깨닫기에 마음이 머물러 집착함으로써 미운 마음을 담아두지 않는다. 


당연히 복수하거나 해칠 생각을 내지 않는다.

 

머물지 않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함에도, 이미 지나간 생각과 현재의 생각, 미래의 생각이 계속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번뇌 망상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얽매임이지 무주가 아니다.

 

모든 법 위에서 매 순간 머물지 않는다면 그 어디에도 얽매일 것이 없다. 


이런 까닭에 무주를 이 법의 근본으로 삼는다. 


심지어 그것이 불법이거나, 열반이거나, 해탈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것은 불법이 아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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