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일러 좌선(坐禪)이라고 하는가?
이 법문에는 장애도 막힘도 없으니, 밖으로 모든 좋고 나쁜 경계를 당하더라도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일러 좌(坐)라고 하고, 안으로 자기 본성을 보아 마음이 부동한 것을 일러 선(禪)이라고 한다.
[육조단경]
누구나 좌선은 앉아서 호흡을 관찰하던가, 몸을 관찰하던가,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좌선관심(坐禪觀心)이라고 한다.
이는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참된 수행이나 참된 참선은 좌선이라고 여긴다.
좌선하는 수행자를 높이 치고, 장좌불와(長坐不臥) 즉 눕지 않고 오래 버티며 앉아 있는 것을 최고의 수행으로 여긴다.
육조스님은 말씀하신다.
앉아 있는 것이 좌가 아니라, 밖으로 일체 선악의 경계에 대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좌다.
그 어떤 선악의 차별경계에 대하여 좋다고 집착하거나, 싫다고 거부하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좌라는 것이다.
선의 경계를 좋아하여 따라가지도 않고, 악의 경계를 싫어하여 거부하지도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지금 이대로의 삶에 대해 선이라거나 악이라는 분별을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어나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해 아무런 해석도 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직심(直心)이다.
삶을 통째로 허용하는 것이 곧 ‘좌’요, 좌선이지, 앉아 있는다고 좌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선 또한 안으로 자성을 보아 움직임이 없는 것이다.
자성을 보면 움직이면서도 움직임이 없다.
그 모든 것이 전부 텅 빈 공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 무엇을 붙잡아 쥐려고 애쓰고, 그 무엇을 버리려고 하겠는가.
자성에 뿌리내리고 있다면 그 모든 움직임이 움직임이 아니니, 그것이 바로 선이다.
좌가 선이고, 선이 좌다. 안팎으로 분별을 따라가지 않고, 생각과 망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더라도 움직임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좌선이다.
글쓴이:법상
무엇을 일러 좌선(坐禪)이라고 하는가?
이 법문에는 장애도 막힘도 없으니, 밖으로 모든 좋고 나쁜 경계를 당하더라도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일러 좌(坐)라고 하고, 안으로 자기 본성을 보아 마음이 부동한 것을 일러 선(禪)이라고 한다.
[육조단경]
누구나 좌선은 앉아서 호흡을 관찰하던가, 몸을 관찰하던가,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좌선관심(坐禪觀心)이라고 한다.
이는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참된 수행이나 참된 참선은 좌선이라고 여긴다.
좌선하는 수행자를 높이 치고, 장좌불와(長坐不臥) 즉 눕지 않고 오래 버티며 앉아 있는 것을 최고의 수행으로 여긴다.
육조스님은 말씀하신다.
앉아 있는 것이 좌가 아니라, 밖으로 일체 선악의 경계에 대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좌다.
그 어떤 선악의 차별경계에 대하여 좋다고 집착하거나, 싫다고 거부하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좌라는 것이다.
선의 경계를 좋아하여 따라가지도 않고, 악의 경계를 싫어하여 거부하지도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지금 이대로의 삶에 대해 선이라거나 악이라는 분별을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어나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해 아무런 해석도 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직심(直心)이다.
삶을 통째로 허용하는 것이 곧 ‘좌’요, 좌선이지, 앉아 있는다고 좌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선 또한 안으로 자성을 보아 움직임이 없는 것이다.
자성을 보면 움직이면서도 움직임이 없다.
그 모든 것이 전부 텅 빈 공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 무엇을 붙잡아 쥐려고 애쓰고, 그 무엇을 버리려고 하겠는가.
자성에 뿌리내리고 있다면 그 모든 움직임이 움직임이 아니니, 그것이 바로 선이다.
좌가 선이고, 선이 좌다. 안팎으로 분별을 따라가지 않고, 생각과 망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더라도 움직임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좌선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