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은 본래 하나의 종지(宗旨)일 뿐이지만, 사람에게는 남쪽과 북쪽이 있다.
법은 한 종류 밖에 없지만, 법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빠르고 느림이 있다.
무엇을 돈(頓)과 점(漸)이라고 하는가?
법에는 돈점이 없지만, 사람의 근기에 영특함과 우둔함이 있기에 돈점이라고 한다.
[육조단경]
법은 이미 드러나 있다. 완성되어 있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법을 다만 중생들은 자신의 분별심으로 인해 확인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 법은 수행이나 특정한 방법을 통해 완성시켜 나가는 공부가 아니다.
만약 깨달음이 본래부터 나에게 없기 때문에 만들어 내야 한다면, 그것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법이니 생사법(生死法), 생멸법(生滅法)일 뿐이다. 이 법은 불생불멸법(不生不滅法)이다.
이처럼 본래부터 있던 것이라면 점차적으로 만들어 갈 필요가 없다. 모르고 있다가 그저 문득 확인될 뿐이다. 문득 확인되는 것은 점차가 아니라 몰록이다.
점교(漸敎)가 아니라 돈교(頓敎)이며, 점차가 아니라 단박이다.
그러나, 법에는 본래 하나의 근본이 있을 뿐, 단박이니 점차니 하여 둘로 나뉠 것이 없다.
다만 사람의 근기에 영리함과 둔함이 있으니, 돈점이라 했을 뿐이다.
견성에 이르기 까지도 단박과 점차의 방편을 말할 수 있고, 견성 이후의 보임 또한 단박과 점차를 말할 수 있다.
견성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발심을 하고 꾸준히 이 법에 관심을 기울이며, 법문을 들으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목말라 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지만 도저히 알 수는 없다. 오로지 모르고 모르는 ‘모를 뿐’의 긴긴 터널 같은 시간을 오직 이 법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버텨내야 한다.
바로 이 시간이 분별심의 습관을 조금씩 버려가는 시간이며, 이러한 기간을 방편으로 점차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어디까지나 중생의 입장에서 본 방편일 뿐, 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시간은 여전히 법을 모르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법이 드러나게 되면, 그것은 몰록이다. 문득 확인된다.
법의 입장에서는 문득 확인되니 돈오(頓悟)이고, 중생의 입장에서는 그 오랜 시간을 꽉 막힌 채 있어야 하니 그 시간을 점차(漸次)라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글쓴이:법상
법은 본래 하나의 종지(宗旨)일 뿐이지만, 사람에게는 남쪽과 북쪽이 있다.
법은 한 종류 밖에 없지만, 법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빠르고 느림이 있다.
무엇을 돈(頓)과 점(漸)이라고 하는가?
법에는 돈점이 없지만, 사람의 근기에 영특함과 우둔함이 있기에 돈점이라고 한다.
[육조단경]
법은 이미 드러나 있다. 완성되어 있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법을 다만 중생들은 자신의 분별심으로 인해 확인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 법은 수행이나 특정한 방법을 통해 완성시켜 나가는 공부가 아니다.
만약 깨달음이 본래부터 나에게 없기 때문에 만들어 내야 한다면, 그것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법이니 생사법(生死法), 생멸법(生滅法)일 뿐이다. 이 법은 불생불멸법(不生不滅法)이다.
이처럼 본래부터 있던 것이라면 점차적으로 만들어 갈 필요가 없다. 모르고 있다가 그저 문득 확인될 뿐이다. 문득 확인되는 것은 점차가 아니라 몰록이다.
점교(漸敎)가 아니라 돈교(頓敎)이며, 점차가 아니라 단박이다.
그러나, 법에는 본래 하나의 근본이 있을 뿐, 단박이니 점차니 하여 둘로 나뉠 것이 없다.
다만 사람의 근기에 영리함과 둔함이 있으니, 돈점이라 했을 뿐이다.
견성에 이르기 까지도 단박과 점차의 방편을 말할 수 있고, 견성 이후의 보임 또한 단박과 점차를 말할 수 있다.
견성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발심을 하고 꾸준히 이 법에 관심을 기울이며, 법문을 들으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목말라 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지만 도저히 알 수는 없다. 오로지 모르고 모르는 ‘모를 뿐’의 긴긴 터널 같은 시간을 오직 이 법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버텨내야 한다.
바로 이 시간이 분별심의 습관을 조금씩 버려가는 시간이며, 이러한 기간을 방편으로 점차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어디까지나 중생의 입장에서 본 방편일 뿐, 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시간은 여전히 법을 모르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법이 드러나게 되면, 그것은 몰록이다. 문득 확인된다.
법의 입장에서는 문득 확인되니 돈오(頓悟)이고, 중생의 입장에서는 그 오랜 시간을 꽉 막힌 채 있어야 하니 그 시간을 점차(漸次)라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