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들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갔다면 질투도 나고 배가 아프겠죠.
그런데 남들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 하면 배 아파하는 현실이 나에게 일어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내 일처럼 함께 따라 기뻐하면서 진정으로 축하해 주고, “정말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고 진심을 다해서 축하해 주면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그 공덕이 내 것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찬탄했던, 바로 그 일이 내게도 일어나기가 더욱 쉬워지는 것이지요.
내 일처럼 찬탄했기 때문에, 내게도 그런 마음이 공명하게 되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파장과 동조를 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부자인 것을 보고, ‘그래 너 잘 났다.
너는 돈 많으니까 그렇게 보시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와~ 저렇게 복을 짓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누군가를 돕고 나누며 베푸는 저 복이 참으로 장하구나. 있어도 못 베푸는 사람도 많은데 저 사람은 참으로 찬탄할 만하구나.’라고 찬탄의 마음을 보내는 것 만으로도 그들이 베푼 공덕이 나에게도 그대로 복으로 쌓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찬탄한 공덕으로 인해 나 또한 머지않아 베풀 수 있을 만큼의 부자가 되고, 베풀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인과응보(因果應報)입니다.
의업(意業)은 마음으로 짓는 업, 생각으로 짓는 업입니다. 생각으로 남들이 잘 된 것을 정말 기뻐하고 찬탄해 준다는 것 자체가 나의 선한 의업을 짓는 일이 되기에, 찬탄하는 업을 지으면 찬탄 받을 결과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는 그렇게 작동합니다. 이 우주 전체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마음의 세계입니다.
마음으로 진실로 기뻐해 주면 나에게도 그런 공덕이 생겨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법계의 법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찬탄의 공덕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현실에서 찬탄의 실천 수행만 하더라도 놀랍게 변화되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겠지요.
수희찬탄하면 나에게도 그 공덕이 생긴다고 했는데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진실에서는 나와 남이 둘로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이법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면,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이고, 따로 떨어진 독자적인 존재라면 너의 공덕은 너의 공덕이고, 나의 공덕만 나의 공덕일 것입니다.
어떻게 상대방의 것이 나의 것이 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진실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본바탕의 진실은 불이법입니다.
우리가 너와 나를 둘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의 분별망상일 뿐입니다.
이처럼 너와 내가 진실로 본바탕에서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에, 너의 공덕이 진실로 나의 공덕인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타인의 공덕은 곧 나의 공덕입니다.
다만 그동안 중생들은 상대방의 공덕이 진실로 나의 공덕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으로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분리된 분별심을 가지고 나눠 놓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그 공덕을 걷어 찬 것일 뿐입니다.
내 스스로 자기의 공덕을 타인의 공덕이라고 여기며 둘로 나눠 놓았던 것이지요. 그것이 중생의 분별망상입니다.
중생의 분별망상만 없다면, 온 천지 나 아닌 것이 없고, 내 공덕 아닌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원만구족한 공덕법신 그 자체입니다.
삶은 이대로 완전한 공덕 자체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셨을 때 사실은 일체중생이 함께 깨달았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곧 나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을 진실로 찬탄하면 내가 그 법을 구현하게 될 확률도 높아집니다.
내가 부처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부자를 찬탄하면 부자가 되는데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면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공부는 남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공부입니다.
남들을 진심으로 찬탄만 해 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질투하면 내가 그걸 못 가지지만, 진실로 찬탄해 주기만 해도 그 모든 공덕을 내가 받게 될 수가 있다는 말씀은 그야말로 묘법입니다.
글쓴이:법상
남들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갔다면 질투도 나고 배가 아프겠죠.
그런데 남들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 하면 배 아파하는 현실이 나에게 일어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내 일처럼 함께 따라 기뻐하면서 진정으로 축하해 주고, “정말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고 진심을 다해서 축하해 주면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그 공덕이 내 것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찬탄했던, 바로 그 일이 내게도 일어나기가 더욱 쉬워지는 것이지요.
내 일처럼 찬탄했기 때문에, 내게도 그런 마음이 공명하게 되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파장과 동조를 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부자인 것을 보고, ‘그래 너 잘 났다.
너는 돈 많으니까 그렇게 보시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와~ 저렇게 복을 짓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누군가를 돕고 나누며 베푸는 저 복이 참으로 장하구나. 있어도 못 베푸는 사람도 많은데 저 사람은 참으로 찬탄할 만하구나.’라고 찬탄의 마음을 보내는 것 만으로도 그들이 베푼 공덕이 나에게도 그대로 복으로 쌓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찬탄한 공덕으로 인해 나 또한 머지않아 베풀 수 있을 만큼의 부자가 되고, 베풀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인과응보(因果應報)입니다.
의업(意業)은 마음으로 짓는 업, 생각으로 짓는 업입니다. 생각으로 남들이 잘 된 것을 정말 기뻐하고 찬탄해 준다는 것 자체가 나의 선한 의업을 짓는 일이 되기에, 찬탄하는 업을 지으면 찬탄 받을 결과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는 그렇게 작동합니다. 이 우주 전체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마음의 세계입니다.
마음으로 진실로 기뻐해 주면 나에게도 그런 공덕이 생겨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법계의 법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찬탄의 공덕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현실에서 찬탄의 실천 수행만 하더라도 놀랍게 변화되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겠지요.
수희찬탄하면 나에게도 그 공덕이 생긴다고 했는데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진실에서는 나와 남이 둘로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이법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면,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이고, 따로 떨어진 독자적인 존재라면 너의 공덕은 너의 공덕이고, 나의 공덕만 나의 공덕일 것입니다.
어떻게 상대방의 것이 나의 것이 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진실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본바탕의 진실은 불이법입니다.
우리가 너와 나를 둘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의 분별망상일 뿐입니다.
이처럼 너와 내가 진실로 본바탕에서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에, 너의 공덕이 진실로 나의 공덕인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타인의 공덕은 곧 나의 공덕입니다.
다만 그동안 중생들은 상대방의 공덕이 진실로 나의 공덕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으로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분리된 분별심을 가지고 나눠 놓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그 공덕을 걷어 찬 것일 뿐입니다.
내 스스로 자기의 공덕을 타인의 공덕이라고 여기며 둘로 나눠 놓았던 것이지요. 그것이 중생의 분별망상입니다.
중생의 분별망상만 없다면, 온 천지 나 아닌 것이 없고, 내 공덕 아닌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원만구족한 공덕법신 그 자체입니다.
삶은 이대로 완전한 공덕 자체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셨을 때 사실은 일체중생이 함께 깨달았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곧 나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을 진실로 찬탄하면 내가 그 법을 구현하게 될 확률도 높아집니다.
내가 부처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부자를 찬탄하면 부자가 되는데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면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공부는 남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공부입니다.
남들을 진심으로 찬탄만 해 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질투하면 내가 그걸 못 가지지만, 진실로 찬탄해 주기만 해도 그 모든 공덕을 내가 받게 될 수가 있다는 말씀은 그야말로 묘법입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