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 마음이 일체 모든 것을 지어냈을 뿐이다
2025-06-13
조회수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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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06-13 22:27
좋고 나쁜, 선과 악 등의 일체 만법이 모두 이 한 법에서 나온다.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확실히 관찰한다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바가 없다.
감사합니다❤️
올바로 보면 그건 하나이고 같은 것입니다
어두움에 빠진 눈으로 잘못 바라보면 분리되어 보일 겁니다
이건 영성이고 이건 세상이고 이건 성스럽고 이건 속되다 등의 차이가 보일 겁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건 뭐든지 자꾸 분리시키려 하고 있어요
가장 높은 경지는, 동시에 이 세상과 영의 세계에 거하되,
그 둘은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경지입니다
하나이며 같은 것으로, 일체성으로 봅니다
모두가 하나인 있음의 점들
모든 곳이 중심이고 모든 곳이 가장자리이며 하나인 빛의 대양
그 안에서 눈부신 광채를 발하는 똑같은 광점들입니다
-레스터 레븐슨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확실히 관찰한다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바가 없다.
감사합니다❤️
올바로 보면 그건 하나이고 같은 것입니다
어두움에 빠진 눈으로 잘못 바라보면 분리되어 보일 겁니다
이건 영성이고 이건 세상이고 이건 성스럽고 이건 속되다 등의 차이가 보일 겁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건 뭐든지 자꾸 분리시키려 하고 있어요
가장 높은 경지는, 동시에 이 세상과 영의 세계에 거하되,
그 둘은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경지입니다
하나이며 같은 것으로, 일체성으로 봅니다
모두가 하나인 있음의 점들
모든 곳이 중심이고 모든 곳이 가장자리이며 하나인 빛의 대양
그 안에서 눈부신 광채를 발하는 똑같은 광점들입니다
-레스터 레븐슨
행복2025-06-13 16:39
수많은 모양의 파도가 일어나도
바다 아닌적이 없습니다
파도가 그대로 바다이듯이
모든 선악ㆍ옳고그름이 한 법의 현현일뿐
당처 바탕 자리는 늘 고요합니다
감사합니다 🙇♀️
바다 아닌적이 없습니다
파도가 그대로 바다이듯이
모든 선악ㆍ옳고그름이 한 법의 현현일뿐
당처 바탕 자리는 늘 고요합니다
감사합니다 🙇♀️


일체 모든 것이 바로 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확실히 관찰한다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바가 없다.
번뇌 망상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성품에서 일어난다.
모든 파도가 바다 위에서 치듯, 이 성품의 바다 위에서 수많은 번뇌망상도 일어난다.
그러니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처럼, 번뇌가 그대로 깨달음이지, 번뇌를 없애야만 깨닫는 것이 아니다.
파도를 없애야만 바다가 드러나는가?
파도의 본성을 깨닫고 나면 파도가 그대로 바다일 뿐이다.
심지어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며 오계(五戒)를 어기는 것조차 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성품 자리에는 옳고 그름도 없고, 나고 죽음도 없으며, 삿되고 삿되지 않음도 없고, 거짓말도 참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분별은 중생의 생각 속에서만 허망하게 생기고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있을까?
그런 것은 없다. 좋고 나쁜, 선과 악 등의 일체 만법이 모두 이 한 법에서 나온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 마음이 일체 모든 것을 지어냈을 뿐이다.
선도 여기에서 나왔고, 악도 여기에서 나왔다.
사람이 행하는 선악의 일체 모든 행이 전부 다 이 한 법, 하나의 성품에서 나왔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다면, 살생하고 도둑질하는 등의 잘못 또한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기에, 일어나도 일어남이 없다.
물론 이 말은 선악이 없으니 나쁜 짓을 해도 무방하다는 뜻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나쁜 짓을 하면 악의 과보를 받는다.
그러니 이 말이 참회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 아니다. 현상에서는 참회를 해야 한다.
그래서 참회에도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이 있다고 했다.
사참은 현상계에서는 죄의 과보가 분명하니 사참회를 통해 잘못을 참회해야 한다는 뜻이고, 이참은 그럼에도 진리의 본성은 텅 비어 공하기에, 본래 죄도 복도 따로 없고, 선악이 분별할 수 없음을 바로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참회요, 이참회라는 뜻이다.
그러나 법의 자리에서 본다면, 그 모든 선악, 옳고 그름, 죄와 복이 전부 한 법의 현현일 뿐이다. 그 모든 선악, 죄와 복이 일어난 그 당처, 바탕의 자리는 고요하여 다시 끊을 것이 없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