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이 곧 지혜이고, 지혜가 곧 선정

20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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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의 참된 의미를 설한다면, 진리에 들어가는 문은 천 가지가 있지만 그 모두 선정과 지혜 아님이 없다. 


요점을 정리해보면, 단지 자기 성품의 체(體:본체)와 용(用:작용)의 두 가지 뜻에 불과하니, 앞에서 말한 ‘공적영지(空寂靈知)’가 바로 그것이다. 선정은 곧 체(體)요 지혜는 용(用)이다.


[수심결]


불교의 수행법의 핵심은 정혜를 고루 닦는 것이다. 


이를 지관(止觀)이라고도 한다. 지관겸수(止觀兼修), 정혜쌍수(定慧雙修)는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 온 말이다. 

 

진리에 들어가는 문은 수많은 방편들이 있을 수가 있지만, 그 모든 수행법, 방편들이 근본에서는 전부 선정과 지혜, 정혜 아님이 없다. 


선에서 설하는 정혜란 곧 자기 성품에 본래 갖추어 져 있는 체(體)와 용(用)을 말한다. 


공적영지라고 할 때 공적이 곧 자기 성품의 본체이고, 영지가 곧 작용이다. 


선정이란 바로 이 본체인 공적을 말하고, 지혜는 곧 작용인 영지를 말한다.

 

보통 수행하는 사람들은 선정을 열심히 갈고 닦아 지혜를 증득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선에서의 정혜는 열심히 닦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성품 속에 이미 본래부터 구족하고 있던 선정과 지혜를 말한다. 


이것은 본래성품의 서로 다른 측면일 뿐이다. 

 

체가 그대로 용이고, 용이 그대로 체다. 


체가 그대로 용이기에 지혜는 선정을 떠나 따로 있지 않고, 용이 그대로 체이기에 선정은 지혜를 떠나 있지 않다. 


선정이 곧 지혜이므로 고요하면서도 항상 소소영령하게 알고, 지혜가 곧 선정이므로 그렇게 깨어서 알면서도 늘 고요함을 잃지 않는다. 

 

조계의 육조혜능 스님 또한 ‘마음에 산란함이 없는 것이 자성의 선정이요, 마음이 어리석지 않음이 자성의 지혜이다’라고 하셨다. 


마음에 산란함이 없는 것이 곧 고요함이며 공적인 본체이고, 마음이 어리석지 않은 것이 곧 깨어있는 앎인 영지인 작용이다. 

 

이와 같이 깨닫게 된다면, 공적과 영지를 자재하게 굴리게 되고, 선정과 지혜가 둘이 아니게 되니, 이것이 ‘돈오한 이가 정혜를 동시에 닦는다’는 뜻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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