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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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그래서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또 신도님들도 절에 나와 기도하면서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는 이미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깨닫지 못한 중생이라는 어떤 실체와 존재가 수행이라는 것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러야 하는 존재’라고 하기보다, ‘본래 부처’ 라고 말씀하셨다.

아주 착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는 깨달음과는 너무나 먼 존재다’라는 것이다. 성철, 원효스님과 같은 고승이며 깨달은 선각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나는 너무 못났고, 부끄럽고, 초라하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이런 정도 밖에 안 되는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감과 좌절감을 품고 살아간다. 인생을 살아가는 토대가 되는 즉, 근본정신이 ‘나는 부족하다, 나는 지혜롭지 못하다,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다’라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나는 못났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생존 경쟁의 장이고, 온통 두려운 곳일 뿐이며, 그 속의 나는 약하고,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고 해서 내가 마음에 어떤 의식을 심느냐에 따라 현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마음속에 ‘나는 부족하고, 못난 중생이다’라는 생각을 심어 놓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중생이고, 너희들은 어리석다, 못났다, 죄도 많이 지었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부처님이 온 것이 아니라, ‘본래 모든 중생은 사실 중생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려고 오신 것이다. 부처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아는 중생이며, 중생은 자신이 깨달았음을 모르는 부처다.

지혜 그 자체가 바로 우리다. 우리가 완전히 깨달은 지혜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완전한 사랑과 자비 그 자체라는 것이다.

 

왜 본래 행복, 만족, 완전, 풍요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깥의 조건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기 마음에 달려 있다. 같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한 사람은 부족을 느끼고, 다른 사람은 풍요를 느낄 수 있다. 같은 조건 속에서 한 사람은 행복을, 다른 사람은 불행을 느낄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마음은 가난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다 갖추어 꽉꽉 채운다 할지라도, 거기에서 만족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된 행복, 풍요는 외적인 조건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에 달렸다. 마음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곧장 바로 이것을 깨닫는다. 지금 여기에서 본래 충족되어 있다는 사실,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는 사실을. 그런 사람은 붓다와 예수처럼, 저 광야 속에서도 충분히 충만하며 구족 되어 있고, 완전할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자기 생각으로 남들과 비교하고 분별함으로써, 이 완전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자기 생각 속의 가난으로 가두고 있다. 생각 속에서는 언제나 가난하고 불행하며 여전히 궁핍하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넘쳐나고, 더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잠시도 쉬지 말고 일해야 한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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