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자리, 분별 이전의 자리
2025-05-21
조회수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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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럭키2025-05-21 22:36
매운 음식을 먹었습니다.
신나게 먹다 보니 문득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구나 깨달았습니다.
뭐가 깨달은 것일까요? 내가?
나는 무엇일까요?
몸뚱이? 마음? 땀?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신나게 먹다 보니 문득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구나 깨달았습니다.
뭐가 깨달은 것일까요? 내가?
나는 무엇일까요?
몸뚱이? 마음? 땀?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행복2025-05-21 17:38
감사합니다 🙇♀️
아직도 자신의 분별만 옳다고 고집하고 있구나!
어떻게 저런식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지? 못마땅한 마음이 잠시잠깐 올라왔습니다
분별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한참 뒤에 떠오른걸보니... 아직 갈 길이 먼것을 깨닫는 하루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분별만 옳다고 고집하고 있구나!
어떻게 저런식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지? 못마땅한 마음이 잠시잠깐 올라왔습니다
분별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한참 뒤에 떠오른걸보니... 아직 갈 길이 먼것을 깨닫는 하루입니다

누구나 눈앞을 본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자기 분별심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눈앞에 어떤 대상을 볼 때, 다 자기식대로 해석해서 그것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 다르다.
사실은 그렇게 해석, 판단, 분별해서 바라보기 이전에 그저 ‘볼 뿐’인, 이것이 먼저 있다.
‘봄’을 아는 이것이 먼저다.
어린 아기도 무엇이든 다 볼 수는 있지만, 아기는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볼 뿐이다.
강아지도 눈앞에 무언가가 오면 그것을 안다.
이처럼 분별하기 이전에 아는 마음을 ‘첫 번째 자리’, ‘분별 이전 자리’, ‘소소영령하게 아는 마음’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보자마자 해석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 첫 번째 자리를 보지 못하고 살지만, 이 공적영지심을 써서 세상 모든 것을 본다.
마치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이 창밖으로 세상을 볼 때, 바깥의 풍경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면서, ‘좋은 풍경’, ‘나쁜 풍경’, ‘아름다운 풍경’, ‘보기싫은 풍경’ 하고 분별하며 바깥을 바라보지만,
사실은 바깥 풍경을 보기에 앞서 먼저, ‘첫 번째 자리’를 먼저 보고 있다. 이 첫 번째 자리가 바로 비유하자면 유리창이다.
바깥 풍경을 보려면 당연히 먼저 유리창을 보아야 한다.
유리창을 통해서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분별되는 바깥 풍경에만 관심을 가지지, 눈앞에 늘 있어왔던, 이 유리창의 존재는 잊고 산다.
이 비유에서처럼, 우리는 이 공적영지한 마음이 바로 첫 번째 자리, 분별 이전의 자리, 무분별의 마음을 늘 써서 대상도 보고, 소리도 듣고, 밥도 먹고, 손도 움직이고, 길도 걷고, 숨도 쉬고, 느끼고 생각하지만, 이 자리에는 관심이 없고, 곧바로 두 번째 자리에 떨어져 그 모든 것을 분별할 줄만 알아왔다.
그러다보니 분별되는 대상에만 관심이 있고, 자기 생각에 비춰 좋다거나 싫다고 허망하게 분별하고, 좋으면 집착하고 싫으면 거부하면서, 집착하는 것을 못 얻을 때도 괴롭고, 거부하는 것이 자꾸 나타나도 괴로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모두 두 번째 자리에 떨어져, 분별심을 주인으로 알고, 그 분별심을 믿고 실체화하며 살았기 때문에 생겨난 허망한 괴로움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