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가 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
2025-05-24
조회수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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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05-24 23:45
공적한 가운데 왔다가 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이다.
진리의 말씀 감사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 1:4)
그것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이다.
진리의 말씀 감사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 1:4)
봄봄🌸🌷2025-05-24 05:29
넵! 김사합니당~♡♡♡🙆♂️🙆♀️🙆
행복2025-05-24 00:49
근원적인 나 있음의 감각.
생각이 멈췄을때 문뜩 들림을 통해
확인되는 것. 멍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말을 들었을때
말이 소리로 들리는 경험...
감사합니다 🙇♀️
생각이 멈췄을때 문뜩 들림을 통해
확인되는 것. 멍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말을 들었을때
말이 소리로 들리는 경험...
감사합니다 🙇♀️

어릴 때도 우리는 ‘내가~’ 하면서 내가 이랬느니 저랬느니 해 왔고, 지금도 ‘내가~’라고 하면서 나 있음의 존재감을 말하곤 한다.
바로 그 때의 그 ‘나’는 이 몸이나 생각, 느낌, 감정이 아니다.
내가 ‘나’라고 알고 있는 이 근원적인 ‘나 있음’의 감각, 그것은 이 몸이나 마음이 아니다.
내 이름을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이것’, 볼 줄 알고, 느낄 줄 알고, 말할 줄 알고, 움직일 줄 아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본래면목이다.
‘이것’은 이렇게 보면 보는 거기에서, 들을 때는 듣는데서 확인될 뿐, 직접 눈으로 보거나 만져볼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냥 ‘있음’이다.
그냥 이렇게 있지 않은가.
보는 것을 통해서 보고 ‘있음’이 확인되고, 듣는 것을 통해서 듣고 ‘있음’이 확인되며, 냄새 맡고 있음, 맛보고 있음, 감촉 느끼고 있음, 생각하고 있음 하는 이 근원적인 ‘있음’이 확인된다.
이렇게 ‘있음’은 그저 확인될 뿐, 따로 대상화하여 찾을 수는 없다.
찾고 있는 이것이 바로 찾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행하려고 하는 즉시 바로 ‘이것’이 확인된다.
이처럼 모든 법이 다 공하지만, 그 텅빈 공함 위에서 인연 따라 생멸하는 연생(緣生) 무생(無生)의 생멸법들이 오고 간다.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 즉 연(緣)하여 생겨난 연생(緣生)은 곧 무생(無生)이다.
즉 인연생 인연멸의 존재는 근원에서 생겨났지만 생겨난 바가 없어 무생(無生)이다.
이처럼 텅 빈 가운데, 무생의 존재들이 연생연멸하며 허망하게 오고간다.
이렇게 오고 가는 것들은 전부 다 연생이기에 무생이다.
이렇게 인연생 인연멸의 모든 존재는 무생이어서 무아(無我)다.
오고 가는 것들, 즉 생멸법은 진정한 나의 본성일 수가 없다.
이런 실상을 공적(空寂)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공적한 가운데 왔다가 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이다.
왔다가 가는 것은 생멸법이고 인연법이어서 무생이고 무아일 뿐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