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자여, 보고 있으면서 곧 번뇌가 다한다면, 이것이 봄에 있어서 최고이고,
듣고 있으면서 곧 번뇌가 다한다면 이것이 들음에서 최고이며,
즐거움을 누리면서 곧 번뇌가 다한다면 이것이 즐거움의 최고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누구나 보고 듣고 즐거움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 뒤에 자기가 본 것에 대해 생각하고 해석하고 판단하면서 번뇌를 일으켜, 좋은 것은 더 보고 싶어하고 싫은 것은 보기 싫어 거부한다.
보되, 이런 분별과 취사간택심이라는 번뇌만 없다면, 그것이 봄의 최상이다.
그것이 곧 지혜로운 자가 보는 최상의 봄이다.
그저 볼 뿐! 아무런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
누구나 다 볼 줄 안다는 이 첫 번째 자리의 '봄'은 누구에게나 있고, 다 쓰고 있다.
다만 '봄'에 대해 분별하여 번뇌에 물들 뿐이다.
무엇이 물들음인가?
봄에 대해 '내가 본다'거나, '내 눈이 본다'고 분별하고, '저것들 본다'고 분별함으로써 나와 세계를, 보는 자와 보는 것을 둘로 나누는 것이 곧 물들음이다.
평생토록 해 왔던 분별의 봄, 번뇌의 봄이 아닌, 최상의 봄의 자리에 있어 보라.
그저 볼 뿐이다.
늘 그러고 있지 않은가?
아주 아주 단순하다.
그저 보기만 하라.
아니 생각 없이 그저 있으라.
그저 보라.
볼 뿐!
그것이 곧 최상의 봄이다.
그것이 곧 마음자리이다.
그것이 곧 본마음이다.
이것이 성품을 보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서 '성품', '본마음'이라는 분별도 생각이니 빼 보라.
봄!
이것이 곧 최상의 봄이다.
이 최상의 봄,
최상의 들음,
여기에서 보고 들어 보라.
봄, 들음.
그 뿐이다.
그것이 최상일 뿐, 다시 다른 것은 없다.
글쓴이:법상
존자여, 보고 있으면서 곧 번뇌가 다한다면, 이것이 봄에 있어서 최고이고,
듣고 있으면서 곧 번뇌가 다한다면 이것이 들음에서 최고이며,
즐거움을 누리면서 곧 번뇌가 다한다면 이것이 즐거움의 최고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누구나 보고 듣고 즐거움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 뒤에 자기가 본 것에 대해 생각하고 해석하고 판단하면서 번뇌를 일으켜, 좋은 것은 더 보고 싶어하고 싫은 것은 보기 싫어 거부한다.
보되, 이런 분별과 취사간택심이라는 번뇌만 없다면, 그것이 봄의 최상이다.
그것이 곧 지혜로운 자가 보는 최상의 봄이다.
그저 볼 뿐! 아무런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
누구나 다 볼 줄 안다는 이 첫 번째 자리의 '봄'은 누구에게나 있고, 다 쓰고 있다.
다만 '봄'에 대해 분별하여 번뇌에 물들 뿐이다.
무엇이 물들음인가?
봄에 대해 '내가 본다'거나, '내 눈이 본다'고 분별하고, '저것들 본다'고 분별함으로써 나와 세계를, 보는 자와 보는 것을 둘로 나누는 것이 곧 물들음이다.
평생토록 해 왔던 분별의 봄, 번뇌의 봄이 아닌, 최상의 봄의 자리에 있어 보라.
그저 볼 뿐이다.
늘 그러고 있지 않은가?
아주 아주 단순하다.
그저 보기만 하라.
아니 생각 없이 그저 있으라.
그저 보라.
볼 뿐!
그것이 곧 최상의 봄이다.
그것이 곧 마음자리이다.
그것이 곧 본마음이다.
이것이 성품을 보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서 '성품', '본마음'이라는 분별도 생각이니 빼 보라.
봄!
이것이 곧 최상의 봄이다.
이 최상의 봄,
최상의 들음,
여기에서 보고 들어 보라.
봄, 들음.
그 뿐이다.
그것이 최상일 뿐, 다시 다른 것은 없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