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과 천당이 하나의 모습이고,열반과 생사가 헛된 이름일 뿐이다.
끊어야 할 탐진치도 없고, 이루어야 할 불도(佛道)도 없다.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니, 저절로 성스런 지혜가 뚜렷하구나.
나는 지금 두루 두루 자재하여, 왕후(王侯)와 장상(將相)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어떤 장애에도 끄달리지 않으니, 정진(精進)도 없고 게으름도 없다.
본성에 맡겨 흘러가니 마치 뒤집힌 것 같지만, 제멋대로 이리저리 막힘없이 자재하다.
설령 칼날을 목에 갖다 대어도, 나는 스스로 편안하여 분별하지 않는다.
[불이송]
지옥과 천당이 하나이고, 생사와 열반이 헛된 이름일 뿐이다. 끊어야 할 탐진치도 없고, 이루어야 할 불도(佛道)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죄다 방편이고, 전부 다 빵일 뿐이다. 부처도 빵이고, 중생도 빵이다.
중생이 있으니까 부처도 있지,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설 곳이 없다. 중생과 부처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는’ 연기적인 관계다.
연기적인 관계는 서로를 인연으로 하여 성립될 수 있기 때문에 인연가합(因緣假合), 말 그대로 가짜로 합쳐진 것이며, 실체가 아니다.
그러니 중생만 티끌이 아니라, 부처도 티끌이다. 부처가 사라질 때 중생도 사라지고, 중생이 사라질 때 부처도 함께 사라진다.
그러니 생사도 열반도, 탐진치도 불도도 전부 다 허망한 하나의 말일 뿐이다. 상(相)일 뿐이다.
이처럼 중생과 부처가 일여하고 평등하다. 이렇게 성스러운 지혜가 뚜렷해지면, 막힘없이 자재하고,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다.
이 법을 깨달으면 죽고 사는 것이 없다. 불생불멸법이다. 죽음과 삶이 일여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인 줄 알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장애도 없고, 끄달림도 없으며, 그런 자에게는 수행도 없고, 정진도 없다.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다.
완전히 본성과 하나 되어, 본성에 내맡기고 흘러갈 뿐이니, 남들이 보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니 뒤집어진 것 같겠지만, 자신은 자유자재하여 제멋대로 살더라도 아무런 막힘이 없다.
생즉사(生卽死)임이 확고하니, 죽음 앞에서도 늘 편안하여 두려움이 없다. 생사라는 분별도 없다.
글쓴이:법상
지옥과 천당이 하나의 모습이고,열반과 생사가 헛된 이름일 뿐이다.
끊어야 할 탐진치도 없고, 이루어야 할 불도(佛道)도 없다.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니, 저절로 성스런 지혜가 뚜렷하구나.
나는 지금 두루 두루 자재하여, 왕후(王侯)와 장상(將相)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어떤 장애에도 끄달리지 않으니, 정진(精進)도 없고 게으름도 없다.
본성에 맡겨 흘러가니 마치 뒤집힌 것 같지만, 제멋대로 이리저리 막힘없이 자재하다.
설령 칼날을 목에 갖다 대어도, 나는 스스로 편안하여 분별하지 않는다.
[불이송]
지옥과 천당이 하나이고, 생사와 열반이 헛된 이름일 뿐이다. 끊어야 할 탐진치도 없고, 이루어야 할 불도(佛道)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죄다 방편이고, 전부 다 빵일 뿐이다. 부처도 빵이고, 중생도 빵이다.
중생이 있으니까 부처도 있지,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설 곳이 없다. 중생과 부처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는’ 연기적인 관계다.
연기적인 관계는 서로를 인연으로 하여 성립될 수 있기 때문에 인연가합(因緣假合), 말 그대로 가짜로 합쳐진 것이며, 실체가 아니다.
그러니 중생만 티끌이 아니라, 부처도 티끌이다. 부처가 사라질 때 중생도 사라지고, 중생이 사라질 때 부처도 함께 사라진다.
그러니 생사도 열반도, 탐진치도 불도도 전부 다 허망한 하나의 말일 뿐이다. 상(相)일 뿐이다.
이처럼 중생과 부처가 일여하고 평등하다. 이렇게 성스러운 지혜가 뚜렷해지면, 막힘없이 자재하고,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다.
이 법을 깨달으면 죽고 사는 것이 없다. 불생불멸법이다. 죽음과 삶이 일여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인 줄 알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장애도 없고, 끄달림도 없으며, 그런 자에게는 수행도 없고, 정진도 없다.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다.
완전히 본성과 하나 되어, 본성에 내맡기고 흘러갈 뿐이니, 남들이 보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니 뒤집어진 것 같겠지만, 자신은 자유자재하여 제멋대로 살더라도 아무런 막힘이 없다.
생즉사(生卽死)임이 확고하니, 죽음 앞에서도 늘 편안하여 두려움이 없다. 생사라는 분별도 없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