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팔정도(3) - 정어(正語)
2024-08-30
조회수 549
28
4
정미혜2024-09-01 04:45
일생에 조모님과 아버님의 행과실을
흠모하여 그리살려고 부단히 노력한바
나름의자부심으로 크게 부끄럼없이 잘살았노라
했으나
그렇타고 흠이없다고는 않습니다
그러나 말에도 파동이 있다는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일생을살면서 참기를 많이하고
살은결과 허물없는인연을 만나면 이제와서 자랑인지 내가 어떻게산것을 하소연처럼
얘기하는 자신을 타인을통해 보고는
아 참 부질없는 짓이구나 부처님이 다른사람으로 인해서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구나하고
부끄러워 습니다
흠모하여 그리살려고 부단히 노력한바
나름의자부심으로 크게 부끄럼없이 잘살았노라
했으나
그렇타고 흠이없다고는 않습니다
그러나 말에도 파동이 있다는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일생을살면서 참기를 많이하고
살은결과 허물없는인연을 만나면 이제와서 자랑인지 내가 어떻게산것을 하소연처럼
얘기하는 자신을 타인을통해 보고는
아 참 부질없는 짓이구나 부처님이 다른사람으로 인해서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구나하고
부끄러워 습니다
iris2024-08-30 23:31
모든 만물에는 고유의 파동이 흐르는데
우리가 하는 말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식물의 정신세계, 아마 2000년 되기 전 즈음 읽었던 것 같아요
초록색 표지였던 것 같은데 내용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자연에 미쳐있었던 때라 그런 종류의 책들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글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식물의 정신세계, 아마 2000년 되기 전 즈음 읽었던 것 같아요
초록색 표지였던 것 같은데 내용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자연에 미쳐있었던 때라 그런 종류의 책들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글 감사합니다🧡
KK럭키2024-08-30 22:38
불법을 접하기 전 긍정적 마인드에 매료되어 매일매일 100번씩 '나는 나를 사랑한다' 외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외치는 것이 '정어'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참된 말, 올바른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베스트셀러였던 어느 책에서 그렇게만 하면 만사가 형통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뀐다고 했습니다.
명과 상이라는 경계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존재의 본질은 뭔지도 모른채 겉모양에 끄달려 무작정 믿고 그렇게 그냥 했습니다.
몇달 하니까 신기하게도 자신감이 충만해지고 나를 사랑하게 되더군요.
애석하게도 그것은 진짜 나가 아니라 상으로 그린 나를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난 이제 됐다 싶은 마음에 '나는 나를 사랑한다'를 안하고 부터는 조금씩 여지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자연스러운 법계의 흐름따라 그렇게 변화된 것이지요..
지금 여기서 돌이켜 보건데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이었던 것입니다.
이 또한 지금 여기서 그려낸 망상입니다.
그저 선지식 말씀을 들으니 자연스레 인연따라 떠오른 생각입니다. 인연생 인연멸.
정어의 이름이 아니라 정어라는 말을 보는, 듣는, 해석하는 그물건 무엇인지 한번 돌이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외치는 것이 '정어'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참된 말, 올바른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베스트셀러였던 어느 책에서 그렇게만 하면 만사가 형통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뀐다고 했습니다.
명과 상이라는 경계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존재의 본질은 뭔지도 모른채 겉모양에 끄달려 무작정 믿고 그렇게 그냥 했습니다.
몇달 하니까 신기하게도 자신감이 충만해지고 나를 사랑하게 되더군요.
애석하게도 그것은 진짜 나가 아니라 상으로 그린 나를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난 이제 됐다 싶은 마음에 '나는 나를 사랑한다'를 안하고 부터는 조금씩 여지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자연스러운 법계의 흐름따라 그렇게 변화된 것이지요..
지금 여기서 돌이켜 보건데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이었던 것입니다.
이 또한 지금 여기서 그려낸 망상입니다.
그저 선지식 말씀을 들으니 자연스레 인연따라 떠오른 생각입니다. 인연생 인연멸.
정어의 이름이 아니라 정어라는 말을 보는, 듣는, 해석하는 그물건 무엇인지 한번 돌이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정어는 ‘바른 말’ ‘올바른 언어생활’이다. 입으로 하는 말과 몸으로 하는 행위는 그 바탕에 생각이라는 의업(意業)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팔정도의 순서는 정견에 이어 정사유[바른 의업]와 정어[바른 구업], 정업[바른 신업]이 이어진다. 바른 견해가 있을 때 바른 사유가 뒤따르게 되고, 바른 견해와 사유를 바탕으로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바른 생각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업력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말이라는 언어생활 또한 힘을 가진 행위이다. 의업 즉 생각이 강력한 힘을 가진 업력이라면, 그 의업의 강력한 힘을 현실로 구현하는 첫 번째 기관이 바로 입이며, 말과 언어다.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떠도는 생각일 때는 아직 현실을 창조하는 힘을 지니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말로 튀어나오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강력한 힘을 지닌 업력(業力)이 되어 업보(業報)를 불러오게 된다. 말로 나오는 순간, 소리 파동은 의미와 힘을 지닌 언어인 구업(口業)이 되어 그 말이 결과를 불러오는 업보라는 실질적인 힘으로 굳어진다.
실제로 우리 뇌는 소리 내어 말을 하면, 자신이 한 말도 외부에서 입력하는 지시적 정보로 받아들여서 그 방향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수많은 자기개발서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로 써서 벽에 붙여 놓고, 소리 내어 반복해 말하게 되면 실제 결과로 이어진다는 성공사례를 무수히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식물의 정신세계』에서는 식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학 끝에 시들어 버린다고 한다. 이처럼 식물이나 물 같은 자연환경의 대상들조차 말 한마디에 울고 웃으며, 인간의 말과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의 말 한 마디는 타인에게 뿐 아니라, 내 주변의 자연 만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말과 언어는 신문, 잡지, 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발달로 인해 그 어느 때 보다도 더욱 강력하고도 중요해 졌다. 별 생각 없이 올린 인터넷 악성 댓글을 보고 누군가는 자살을 하니 정어(正語)의 수행은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더욱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잡아함경』 28경에서는 “어떤 것이 정어(正語)인가. 망어(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기어(綺語)를 떠난 것이다.”라고 설한다. 망어란 진실하지 못한 거짓된 말이며, 양설이란 화합을 깨뜨리는 이간질의 말이고, 악구란 욕설과 같이 거칠고 사나운 말이고, 기어란 쓸데없는 말, 꾸며낸 말, 법답지 못한 말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정견과 정사유 없이, 어리석은 견해와 생각이 선행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망어, 양설, 악구, 기어와 같은 삿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바른 말’에서 바르다는 의미도 물론 연기와 중도, 무아와 자비를 의미한다. 너와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면 상대방을 향해 욕설을 한다거나, 거짓말이나 이간질하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상대방이 곧 나라는 동체(同體)와 연기적 자각에서는 자연스럽게 자비로운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무아와 중도라는 자각이 바탕이 된다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실체론적인 사고방식을 내포하는 언어나 치우친 언어를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향해 옳다거나 그르다는 양 극단의 판단이 내포된 말 대신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무분별의 말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남이 나를 향해 격앙된 말투로 큰 소리를 쳤을지라도, ‘그 녀석이 나에게 화를 냈다’거나, ‘나를 미워한다’거나 하고 판단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그가 나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고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에서 현실을 걸러서 해석한 언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드러내주는 표현들이 사용될 것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