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답게, 자연스럽게, 집착 없이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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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군에 있을 때 여러 지휘관을 만났다. 대부분의 지휘관이 성격도 좋고, 대인관계도 좋으며, 외향적이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할 줄 알았다. 저런 사람이 지휘관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한 번은 너무나도 수줍어하고 말 수도 없으며 조용 조용한 내향적 성격이었다. 회의를 주관하면서도 별다른 말이 없고, 훈시 같은 것도 없고, 어지간한 일은 참모에게 완전히 내맡기는 분이셨다. 중요한 훈련을 앞두고도 소란스럽지 않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저 평소 하던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다들 의아해 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너무도 좋았다.

그런데 그 지휘관이 임무를 마치고 전출을 갈 때, 처음으로 참모들이 ‘내 인생 최고의 지휘관과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며 눈물을 훔치곤 했다.

이것이 바로 ‘자기답게 사는 길’이 아닐까? 일반적이라면, 지휘관은 좀 외향적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 소통하고 걸출한 사람이어야 하겠지만, 이 사람이 자기다운 길을 버리고 남들처럼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면 그 자리까지 올라가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기다운 방식으로 해 나갈 때 가장 자연스럽고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그럴 때 힘이 들지 않고, 가벼우며,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성격이 특정 일에 잘 안 맞는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자기답게 해 나가다 보면, 자기만의 길이 열린다. 그럴 때 그 길은 누구도 흉내를 내지 못하는, 오롯한 자기 것이 된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부여된 일과 업무를 통해 이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일, 그것을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다. 너무 과도하게 남들처럼 하려고 애쓰거나, 억지스러운 방식을 고집할 것은 없다. 최대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되, 자 방식대로 소화되고 자연스럽게 통합될 때 진정한 자기의 것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 꼭 거창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작고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꽃밭에 물을 주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 남을 가르치는 일, 농부, 경비원, 회사원 무엇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야말로 지금 자기다운 온전한 열정을 쏟아야 할 일이다. 그 일을 통해 세상을 도울 수 있고, 그 일을 통해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자기답게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자기다운 길을 열 수 있을까? 그러려면 자연스러워야 한다. 억지스럽지 않아야 하고, 그 일에 과도한 욕심이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이완되어 있고, 큰 욕심과 집착이 없으며, 순수한 열정으로 주어진 일을 해 나간다면, 바로 그 때 저절로 가장 자기다운 길이 열린다. 그렇게 일을 할 때, ‘내가 잘 해야지’, ‘내가 진급해야지’, ‘내가 잘 보여야지’ 하는 생각이 없기에,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내맡겨진 채 자기 본연의 바탕 자리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힘이 나를 이끌고 간다. 그런 일은 하면서도 가볍고, 쉽게 몰입되며, 즐기며 하게 된다. 그럴 때 그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가 저절로 이끄는 듯한 완전한 내맡김, 우주적인 어떤 도움 혹은 은총, 나에게서는 도저히 나오지 못할 것 같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창발성 같은 것들을 창조해낸다. 일에 내가 사라질수록 전체가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사는 것을 이 에고는 다만 연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나를 버릴수록 삶은 더 큰 진가를 발휘한다. 아집을 내려놓을수록 일은 놀라운 방식으로 확장된다. 이것은 억지로, 죽기 살기로, 진급해야 하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기 싫지만 하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하게 되면 내 노력과 나의 에너지, 내 복 안에서만 결과를 끌어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내 힘으로 해내야 하니 에너지는 더욱 고갈된다. 그러나 내가 사라지고,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으며, 자연스럽게 자기답게 행하게 되면, 그 일은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일이 되어버린다. 저절로 우주가 나를 돕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곧 에고에서 벗어나 우주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본래 우리는 이 몸에 갇혀 있는 작은 존재가 아니라, 우주적이고, 전체적이며, 대아적인, 불교의 표현으로 말하면, 허공법신(虛空法身)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와 내 집착을 내려놓고, 진리에, 부처님께 일체를 내맡기고 하게 되면, 저절로 가볍게 자연스럽게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어질 것이다. 그것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최선을 다 하되, 결과는 완전히 내맡기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마음 자세라면, 어떤 근심 걱정이 있겠는가.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 아닌데. 어차피 내가 그 일을 해 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은 알 수 없는 대로 두자. 모를 뿐인 현실을 알려고 애쓸 것은 없다. ‘모를 뿐’임을 깨닫게 되면, 오히려 더 편안해진다. 완전히 내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르니 진리가 알아서 진리의 길을 가겠구나 하고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나를 버리고 내맡긴 채 자연스럽게 일을 하다 보면 저절로 몰입이 되고, 일의 삼매에 빠지게 되며, 그랬을 때 에고의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던 도약적인 아이디어와 창의적 방식이 저절로 드러난다.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바가바드 기타에서 말한 ‘카르마 요가’다. 나에게 맡겨진 일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참된 요가이며 명상이고 수행이라는 뜻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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