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으로 악업의 업보가 대치되지는 않는다

20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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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당시에부터 자이나교라는 종교가 성행하였는데요, 자이나교에서는 인간이 괴로움을 받는 이유는 과거로부터 온 업 때문이라고 하면서, 쌓인 업을 녹이려면 고행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고행을 지금 미리 받음으로써 앞으로 업 때문에 받을 과보를 미리 고행으로 당겨 받는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자이나교의 고행주의입니다.

 

여기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악업을 지은 뒤에 고행을 한다고 해서 그 악업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설하십니다.

 

고행으로 악업의 업보가 대치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어리석어 허망한 방편으로 부질없이 업을 끊거나 전환시키려고 하지만, 고행으로 생기는 고통만 받을 뿐, 실로 얻는 것은 없다'고 설하십니다.

 

그러면서 고행을 통해 고통을 받고, 악업의 과보를 받으며 또 한 번 고통을 받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고 탄식하십니다.

 

사실 이 자이나교의 고행주의는 요즘에도 어리석은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3,000배, 108배 절을 하면, 그 고행한 만큼 악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업장은 고행으로 대치되지 않습니다.

 

절수행을 통해 몸이 건강해지고, 반복되는 절을 통해 의식이 분별망상에 끌려가지 않으며, 절수행 할 때 지관을 닦아감으로써 마음공부가 되는 것이지, 그 고행 자체에 공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금강경을 독송할 때, 몸이 부서질 정도로 힘이들어도, 장궤합장을 하고 7독을 한 번도 주저앉지 않고 똑바로 장궤를 유지한 채 해야 공덕이 된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고행주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좌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눕지 앉고 장자불와 좌선 수행을 몇 일이고 지속하면서, 졸려도 억지로 참고, 눕지 않으며 고행할 때, 그 고행에서 공덕이 나온다고 여기면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과는 어긋납니다.

 

부처님께서는 고행주의와 쾌락주의 두 가지 모두 중도에서 어긋남을 보시고,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과도한 고행은 오히려 수행에 방해가 됩니다.

 

중도의 실천이야말로, 참된 지혜에 이르게 합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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