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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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공부와 불법의 공부가 다른 점은, 세속의 모든 공부는 명확한 목표가 주어지고,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는 수단을 통해서, 결국 그 결과를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불법의 공부는 세속 공부와는 달리, 명확하게 목표가 그려지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도 선명하지 않습니다.

 

세속의 공부가 '알고 가는 길'이라면, 이 출세간의 공부는 '모르고 가는 길'에 가깝습니다.

 

세속은 목표도 알고, 그 곳으로 가는 방법도 알지만, 출세간의 공부에서는 특정한 목표를 세워서도 안 되고, 특별한 수행법을 고정지어서도 안 됩니다.

 

물론 '깨달음'이니, '견성'이니, '열반'이니 하는 가고자 하는 목표의 '이름'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머릿속에 그림 그려서 그 이미지에 맞는 목표를 얻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깨달음, 견성, 열반, 본래면목이 무엇인지,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알고는 싶지만, 그것을 모른다는 자세로 밀고 나가는 것이 공부인의 자세입니다.

 

그 어떤 견해도 취하지 않고, 그 어떤 모양도 취하지 않으며, 그 어떤 곳에도 안주하거나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도의 길입니다.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고 가면 그래도 좀 믿고 가겠는데, 모르고 가야 하는 길이니, 얼마나 답답하고 꽉 막힌 길이겠습니까?

 

모르지만 어쨌든 확인해야 겠다는 발버둥치는 심정으로, 방법은 없지만 어떻게든 해 봐야겠다는 꽉 막힌 심정으로, 은산철벽에 가로막힌 사람처럼 모르면서 가는 공부가 이 공부입니다.

 

잘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하면 되는지도 모르겠고, 특정한 방법론에 의지하지도 않고, 목적지에 무엇이 나올지도 전혀 그림 그리지 않은 채, 그저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해, 법에 의지해, 자기 자신에 의지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엇이 나올지도 모른 채, 그저 묵묵히 답답하게 타는 목마름으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두이고, 참선이며, 모를 뿐의 공부이고, 불이중도입니다.

 

세속의 방식대로,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노라는 생각은 의식이 행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의식의 길로는 의식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분별의식 너머를 가기 위해서는 분별이 꽉 막히게 해야 합니다.

 

모르고 그저 갈 뿐!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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