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분들이 공부 체험에 대해 궁금해 하십니다.
우리는 그동안 전통적인 간화선의 전통, 혹은 신비주의나 삼매체험 같은 전통 속에서 깨달음에 대한 환상에 대해 익숙하게 배워왔습니다.
그 전통에서 깨달음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우리 중생들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저 멀리 드높은 곳에 있는 무엇이었습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어찌 지금 여기일 수 있겠으며, 화엄경의 52위를 지나 얻게 되는 부처님의 경지가 어찌 이 당연한 이것일 수 있겠습니까?
깨달음에 대한 환상은 너무나도 높고, 크고, 위대하고, 신비로우며, 이 평범한 나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어떤 스님들의 깨달음 이야기를 보면,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고행 끝에, 문득 온 우주가 사라지고, 통 밑이 쑥 빠지며, 그 놀라운 황홀경의 순간이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간 지속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음의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그것이 법상(法相)인 줄은 꿈에도 모릅니다.
이런 것들이 깨달음을 우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저 높은 곳의 위대한 무엇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선의 황금기 때 선사, 조사 스님들은 이것을 너무나도 평범하여 평상심이라 말씀하셨고, 눈을 가지고 눈을 찾는다, 머리를 가지고 머리를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그것임에도 스스로 믿지 못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체험이라는 것은 크게 오든 작게 오든, 그것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생멸법일 뿐입니다.
그것이 깨달음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깨달음을 추구하는 방식에 따라, 인과법으로써, 크게 올지 작게 올지가 바뀔 뿐입니다.
그것은 교도소에 수감했던 사람이 출소하는 날의 그 기쁨과도 비슷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다가 갑자기 출소했다면 그 기쁨은 더욱 크겠지요.
그러나 그 기쁨은 출소의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진짜 출소는 이제 바깥에 나와 새롭게 삶을 사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체험이 어떻게 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크게 오든 작게 오든, 그것을 통해 삶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가? 괴로움이 소멸되고 있는가?
이것에 대한 점검이 있을 뿐입니다.
단번에 끝나는 공부는 아닙니다.
꾸준히 공부해 갈 뿐!
글쓴이:법상
많은 분들이 공부 체험에 대해 궁금해 하십니다.
우리는 그동안 전통적인 간화선의 전통, 혹은 신비주의나 삼매체험 같은 전통 속에서 깨달음에 대한 환상에 대해 익숙하게 배워왔습니다.
그 전통에서 깨달음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우리 중생들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저 멀리 드높은 곳에 있는 무엇이었습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어찌 지금 여기일 수 있겠으며, 화엄경의 52위를 지나 얻게 되는 부처님의 경지가 어찌 이 당연한 이것일 수 있겠습니까?
깨달음에 대한 환상은 너무나도 높고, 크고, 위대하고, 신비로우며, 이 평범한 나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어떤 스님들의 깨달음 이야기를 보면,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고행 끝에, 문득 온 우주가 사라지고, 통 밑이 쑥 빠지며, 그 놀라운 황홀경의 순간이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간 지속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음의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그것이 법상(法相)인 줄은 꿈에도 모릅니다.
이런 것들이 깨달음을 우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저 높은 곳의 위대한 무엇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선의 황금기 때 선사, 조사 스님들은 이것을 너무나도 평범하여 평상심이라 말씀하셨고, 눈을 가지고 눈을 찾는다, 머리를 가지고 머리를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그것임에도 스스로 믿지 못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체험이라는 것은 크게 오든 작게 오든, 그것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생멸법일 뿐입니다.
그것이 깨달음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깨달음을 추구하는 방식에 따라, 인과법으로써, 크게 올지 작게 올지가 바뀔 뿐입니다.
그것은 교도소에 수감했던 사람이 출소하는 날의 그 기쁨과도 비슷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다가 갑자기 출소했다면 그 기쁨은 더욱 크겠지요.
그러나 그 기쁨은 출소의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진짜 출소는 이제 바깥에 나와 새롭게 삶을 사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체험이 어떻게 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크게 오든 작게 오든, 그것을 통해 삶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가? 괴로움이 소멸되고 있는가?
이것에 대한 점검이 있을 뿐입니다.
단번에 끝나는 공부는 아닙니다.
꾸준히 공부해 갈 뿐!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