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뿐으로 그저 있을 뿐!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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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명상하고, 좌선하면 될까?


유위조작이 없는, 수행이 아닌 수행, 불이중도의 수행을 도대체 어떻게 '해' 볼 수 있단 말인가?


'해'야할 어떤 수행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내가'라는 수행의 주체가 생길 뿐이다.


내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앉아 있어 보라.


꼭 가부좌를 반드시 앉아서 할 필요조차 없다.


그저 편안하게 있어 보라.


그냥 있으라.


이것이 전부다.


그냥 있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다만 깨어있으라.


그 모든 것들이 일어나도록 허용해 주라.


호흡, 들려오는 소리, 몸의 감각, 보이는 것들, 속삭이는 생각들 그 모든 것들을 판단, 해석하지 않고 그저 허용해 주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드러나고 사라자는 모든 것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라.


그저 그것이 일어나도록 허용한 채, 그것을 온전히 맛보라.


그것 속으로 뛰어들어가라.


그것이 되라.


표현은 '되라', '가라', '해주라'고 했지만, 이것은 말의 속성일 뿐, 무엇이 되거나 어디로 가거나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는 것이다.


허용한 채.


경험할 뿐이다.


있는 것을 있도록 내버려두라.


이름 붙이는 것은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지만, 편의상 이것을 '받아들임 명상' '허용선'이라고 하자.


선이란 이처럼 무위로써 지금 여기를 허용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허용되어지고 있는 것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일어나는 그것을 그저 맛보는 것이다.


붙잡거나 피하는 것 없이.


거기에 있을 뿐!


아무런 해석이 없다.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를 뿐!


그 모든 것의 목격자가 되는 것조차 아니다.


모를 뿐으로 그저 있을 뿐!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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