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선행은 선행을 모른다. 참된 나눔은 나눔을 모른다. 스스로 베풂을 실천하고, 선행을, 나눔을 실천하고서도 스스로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잊어버렸을 때 그 선행은 완성된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선행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공간적으로 자리를 옮겨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옮김 또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때가 되어 옮겨 갔을 뿐이다. 그저 그것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인연 따라 갔을 뿐이다. 문제는 바람이 불어왔다가 불어가듯 잠시 내게로 왔다가 스치고 간 것에 대해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며 있지도 않은 소유의 관념을 불어넣는데서 시작되었다. ‘내 것’이 다른 사람에게로 간 것이 아니다. 그저 가야할 인연 따라 제 길을 갔을 뿐이다. 거기에 ‘보시’니, ‘나눔’이니, ‘선행’이니 하는 관념을 불어넣지 말라. 그런 모든 ‘나’라는 아집에 기초한 관념을 놓아버리는 순간 이 세상은 완전히 풍요로운 곳으로 탈바꿈한다.
이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선행을 하고나서 선행에 얽매이지 않는다. 선행을 했다는 데 마음을 머물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는다. 선행을 하고 나서 잊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모든 복락을 누릴 수 있고, 모든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선행을 하고 잊지 못하면, 복락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로인해 윤회의 수레바퀴에 갇히고 만다. 하고 나서 했다는 상이 없어야 모름지기 수행의 문에 들어설 수 있다. 함이 없이 선행을 행하라. 함이 없는 선행은 모든 복락의 어머니가 되고, 모든 지혜의 어머니가 된다.
지혜 있는 사람은 힘들여서 착한 일을 하고도
자기가 한 선행에 매달리지 않는다.
선행을 하고서도 그것을 잊어버리지 못하면
교만한 마음이 생겨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선행을 하고서도 그것을 잊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모든 번뇌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니
부지런히 선행하되 마음에 집착을 두지 말라.
[별역잡아함경]
참된 선행은 선행을 모른다. 참된 나눔은 나눔을 모른다. 스스로 베풂을 실천하고, 선행을, 나눔을 실천하고서도 스스로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잊어버렸을 때 그 선행은 완성된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선행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공간적으로 자리를 옮겨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옮김 또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때가 되어 옮겨 갔을 뿐이다. 그저 그것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인연 따라 갔을 뿐이다. 문제는 바람이 불어왔다가 불어가듯 잠시 내게로 왔다가 스치고 간 것에 대해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며 있지도 않은 소유의 관념을 불어넣는데서 시작되었다. ‘내 것’이 다른 사람에게로 간 것이 아니다. 그저 가야할 인연 따라 제 길을 갔을 뿐이다. 거기에 ‘보시’니, ‘나눔’이니, ‘선행’이니 하는 관념을 불어넣지 말라. 그런 모든 ‘나’라는 아집에 기초한 관념을 놓아버리는 순간 이 세상은 완전히 풍요로운 곳으로 탈바꿈한다.
이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선행을 하고나서 선행에 얽매이지 않는다. 선행을 했다는 데 마음을 머물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는다. 선행을 하고 나서 잊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모든 복락을 누릴 수 있고, 모든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선행을 하고 잊지 못하면, 복락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로인해 윤회의 수레바퀴에 갇히고 만다. 하고 나서 했다는 상이 없어야 모름지기 수행의 문에 들어설 수 있다. 함이 없이 선행을 행하라. 함이 없는 선행은 모든 복락의 어머니가 되고, 모든 지혜의 어머니가 된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