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없는 것을 밝게 깨닫는 것을 평등한 성품이라 한다

20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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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없는 것을 밝게 깨닫는 것을 평등한 성품이라 한다. 


성품은 차이가 없으나 작용은 같지 않아서, 미혹에 있으면 식(識)이 되고, 깨달음에 있으면 지혜(智)가 된다.


[마조어록]


우리의 성품은 하나여서 차이가 없으나 작용은 같지 않다. 


그래서 6식으로 작용이 드러난다고 한다. 


이렇게 한 성품이 6가지 다른 작용으로 드러나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식(識)이다.


6가지 식들이 서로 분별해서 대상을 알 때 그것은 진짜가 아니므로 미혹해서 아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미혹에 있으면 식이 된다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에게 분별된 것들을 진짜라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며 분별한 세상이 대상으로서 진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허망한 분별의 허상일 뿐이다.


분별하지 않을 때 깨달음에 있다고 하며, 그것을 일러 곧 지혜라 한다. 


갓난 아기들이, 보고 듣고 맛보며 분별작용을 다 하지만 그 분별에 자아를 개입시키지 않으므고 끌려가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보되 보기만 하고 듣되 듣기만 할 때 곧 지혜가 있다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교리는 다 무아(無我)를 설하고 있다.


중생들은 십팔계가 모두 내 것이라 생각하며, 보는 내가 있고(주관계) 보이는 대상(객관계)이 있으며 그 대상을 분별하는 의식(의식계)이 있다고 알고 있지만, 부처님이 말씀하신 십팔계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하는 인연생기를 설하시므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한결같이 설하고 있을 뿐이다.


연생무생(緣生無生)이다. 


인연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은 본래 생겨난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없고 내가 만들어 낸 '세상'도 실재하지 않음을 설하는 것이 부처님의 교리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세상 일에 끝없이 '나'를 개입시키고, 내가 모든 일을 하며 내가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내가 내 바깥의 모든 일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의 생각대로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세상이 바뀌지 않으므로 괴로워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이 공부를 통해 근원적인 면에서 해결을 보아야하는 것이다. 


이 마음공부를 통해, '나'도 세상도 실제가 아닌 '공(空)'이라는, 생겨나 있지만 본래 생겨난 바가 없다는 사실에 명백해 질 때, 이 모든 문제들이 일시에 해결되는 것이다.


초기불교 경전이든 반야심경이든 마조어록이든... 


어떠한 교리를 공부하든 간에, 결국에는 모든 경전들이 이 하나의 자리만을 이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다양한 교리를 통해 한결같이 가리키고 있는 이 하나의 낙처인 법, 이 마음 하나를 바르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나와 너, 이것과 저것, 옳고 그름... 이렇게 둘로 나누는 것은 어리석은 중생들의 일이다. 


둘이 없음을 밝게 깨달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곧 성품을 보는 것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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