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보고, 듣고, 웃고, 말하며,
혹은 성내거나 기뻐하거나, 또는 옳다, 그르다 하는 가지가지의 행위와 동작은 필경 누가 그렇게 하게 하는가?
만약 육신이 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금방 목숨이 끊어진 사람의 몸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고,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혀는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손은 잡지 못하고, 발은 걷지 못하는가?
이 몸이 하는 것이라면, 사람의 목숨이 지금 막 끊어졌더라도, 몸은 여전히 그 몸이니 몸이 몸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몸이 눈을 써서 보게 하고, 귀를 써서 듣게 하고, 손으로 잡고, 발로 걸어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이 몸의 귀가 듣는 것이라면 내 이름을 부르면 늘 들어야 하지만, 깊은 생각에 빠져 있거나, TV에 집중해 있을 때는 그 소리를 못 듣기도 한다.
귀가 있는데 왜 못 들을까?
깊은 잠에 빠져 있더라도 귀는 열려 있으니 늘 들어야 하지만 왜 못 듣는 것일까?
혹시 귀가 듣는 것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보고, 듣고,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본마음, 본래면목, 공적영지심이 하는 것이지 그대의 육신이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본마음, 본래면목, 공적영지심이라 하는 것은 하나의 말이고, 언어일 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 이름 붙여 본 것이고, 언어로 가리킬 수 없는 것을 그냥 임시로 이름 지어 붙여 본 것일 뿐이지, 본마음, 본래면목, 공적영지라고 하는 이 진정한 나의 본래모습을 따로 보거나 만져보거나 알 수는 없다.
그런 무언가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로 있지 않다는 말은, 그저 소리를 듣고, 눈으로 보고, 바람은 불어오고, 나뭇잎은 흔들리고, 배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손으로 붙잡고, 발로 걷는 등의 일체 모든 작용이 그대로 그대의 본마음이요 본래면목이라는 것이다.
둘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가 전부이지, 따로 있는 부처나 깨달음은 없다.
글쓴이:법상
그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보고, 듣고, 웃고, 말하며,
혹은 성내거나 기뻐하거나, 또는 옳다, 그르다 하는 가지가지의 행위와 동작은 필경 누가 그렇게 하게 하는가?
만약 육신이 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금방 목숨이 끊어진 사람의 몸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고,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혀는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손은 잡지 못하고, 발은 걷지 못하는가?
이 몸이 하는 것이라면, 사람의 목숨이 지금 막 끊어졌더라도, 몸은 여전히 그 몸이니 몸이 몸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몸이 눈을 써서 보게 하고, 귀를 써서 듣게 하고, 손으로 잡고, 발로 걸어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이 몸의 귀가 듣는 것이라면 내 이름을 부르면 늘 들어야 하지만, 깊은 생각에 빠져 있거나, TV에 집중해 있을 때는 그 소리를 못 듣기도 한다.
귀가 있는데 왜 못 들을까?
깊은 잠에 빠져 있더라도 귀는 열려 있으니 늘 들어야 하지만 왜 못 듣는 것일까?
혹시 귀가 듣는 것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보고, 듣고,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본마음, 본래면목, 공적영지심이 하는 것이지 그대의 육신이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본마음, 본래면목, 공적영지심이라 하는 것은 하나의 말이고, 언어일 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 이름 붙여 본 것이고, 언어로 가리킬 수 없는 것을 그냥 임시로 이름 지어 붙여 본 것일 뿐이지, 본마음, 본래면목, 공적영지라고 하는 이 진정한 나의 본래모습을 따로 보거나 만져보거나 알 수는 없다.
그런 무언가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로 있지 않다는 말은, 그저 소리를 듣고, 눈으로 보고, 바람은 불어오고, 나뭇잎은 흔들리고, 배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손으로 붙잡고, 발로 걷는 등의 일체 모든 작용이 그대로 그대의 본마음이요 본래면목이라는 것이다.
둘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가 전부이지, 따로 있는 부처나 깨달음은 없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