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모든 것이 그대로 법의 몸

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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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 몸 안에만 있을까? 


저 바깥 어느 곳이든 ‘이것’이 확인되지 않는가? 


천정에도, 벽에도, 나무에서, 산에도, 들에서도, 바다에서도, 타인에게서도, 바람과 구름에서도, 반짝이는 별에서도 ‘이것’이 확인되지 않는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바로 이 소식을 새벽별이 깜빡일 때 확인하신 것이다. 


저 바깥 저 먼 우주의 하늘 위 어느 곳에서 별이 빛나는 줄 알았는데, 문득 그 별이 바로 나 자신임이 드러난 것이다. 저 별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깨달으신 것이다. 

 

이 공적영지심을 그래서 법신불(法身佛)이라고도 부른다. 


법신(法身)이란 곧 이 세상 삼라만상 모든 것이 그대로 법의 몸, 불신(佛身)이라는 것이다. 


이를 화엄경에서는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라 하여, 부처님의 몸은 우주 법계 일체 모든 곳에 충만하여 아니 계신 곳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법성게의 표현처럼,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즉 하나가 곧 일체 모든 것이며, 일체 모든 것이 곧 하나라는 말도 할 수 있고,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즉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 전체를 머금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신통이고 묘용이다. 


이처럼 말 하고 듣고,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여 걷는 것이 그대로 신통묘용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잡고, 발로 걷는 것이 그대로 법이요, 본래면목임을 확인했다면, 이 평범한 일상사가 그대로 신통묘용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따로 축지법을 쓰고, 남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 신통력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방거사는 ‘참된 신통과 묘용은 물 긷고 나무 하는 일’(神通幷妙用 運水及搬柴)이라고 했다. 


물 긷고 나무하는 이 평범한 일상사를 도대체 무엇이 하는가? 


공적영지심이 이 모든 것을 다 하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한량없는 묘한 작용이다. 

 

물 위를 걷는 것이 신통이 아니라, 길 위를 걷는 이것이 바로 신통묘용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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