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돈과 나쁜 돈의 기준
2025-01-20
조회수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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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01-20 23:33
돈을 많이 버는 쪽을 선택하더라도 좋은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한 편으로,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만물을 싹 틔우는 소중한 단비처럼,
물질계와 정신계 모두를 풍요롭게 만드는 순환재로 바라본다면
돈이라는 재화가 우리 삶에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한 편으로,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만물을 싹 틔우는 소중한 단비처럼,
물질계와 정신계 모두를 풍요롭게 만드는 순환재로 바라본다면
돈이라는 재화가 우리 삶에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온2025-01-20 18:28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지혜와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가에 있다 (...) '나 개인만을 위해 쓸 것이 아니라 이타적으로 남을 위해 쓰겠다.'는 정신. 이 정신이 토대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행복하고, 벌어도 행복하고, 번 이후에 다시 베풀면서 행복할 수 있다.
돈에 대해 무서워하고 어려워하면서도 꼭 움켜 쥐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돈에 대해 무서워하고 어려워하면서도 꼭 움켜 쥐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돈은 이처럼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 아니면 청빈의 가치를 위해 돈을 포기해야 할까? 가난하지만 만족하면서 사는 게 나을까? 부유하고 풍요로우면서도 나누며 사는 것이 좋을까?
어느 쪽은 좋고 어떤 쪽은 나쁘다고 결정지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부를 선택해도 좋고, 가난과 청빈의 정신을 선택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통해 얼마나 지혜롭고도 자비롭게 삶을 살아나갈 것인가에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지혜와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가에 있다. 표면적인 선택 그 자체는 중립일 뿐, 그 이면의 깊은 삶이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무조건 가난과 청빈, 무소유와 무욕만을 주장하는 종교는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너무 부자와 욕심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균형을 위해 가난하게 사는 것, 청빈하게 사는 방편을 강조한 것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분들은 “지혜롭게 부자 되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라고 묻곤 한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돈을 많이 벌면서도 치우침 없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 보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쪽을 선택하더라도 좋은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과 지혜가 우뚝 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자신을 돕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돈은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돈을 나쁘다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돈에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돈을 나 자신만을 위해서 쓸 때, 즉 나의 아상(我相)을 강화하고 이기심과 아집(我執)을 키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될 경우에 나빠진다.
반대로 아상을 타파하는 방향으로 사용된다면 돈은 좋은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이타적으로 베풀고, 나누고, 타인을 돕는 용도로 사용되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쓰여진다면 돈은 많이 벌어도 좋다. 또한 지혜와 배움, 명상과 영성과 베풂 등의 종교적 실천 등을 위해 돈이 쓰여 질 때도 그 돈은 아름다운 것이 된다.
따라서 돈을 벌어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 개인만을 위해 쓸 것이 아니라 이타적으로 남을 위해 쓰겠다’는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 정신이 토대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행복하고, 벌어도 행복하고, 번 이후에 다시 베풀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아상과 아집, 이기심에 쌓여 있은 사람은 돈을 번다고 해서 행복해 질 수 없다. 오히려 자신에게 돈이 독이 될 수 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