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을 깨닫는 것은 본래 있던 자리를 그저 확인하는 것일 뿐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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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순간, 깨달음의 노래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이토록 자성이 본래 청정함을 어찌 기대나 했겠는가? 


끊임없이 물질적인 정신적인 생멸변화가 일어나는 매 순간에도 언제나 자성은 생멸한 바가 없었다. 


자성은 본래 구족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성은 단 한 번도 동요된 적도 없고, 사라지거나, 줄어든 적도 없이, 언제나 늘 여여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이 세상 우주 삼라만상 전부가 자성으로부터 생겨난 것일 뿐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그것이다. 


자성이 능히 세상 만법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일체유심조의 뜻이다. 


일체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다. 


마음, 법, 자성, 불성이 세상 만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마음자리에서 온 우주만물이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 자리는 그 모든 우주 만물을 만들어내지만, 이 자리만은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자리가 아니다.

 

자성을 깨닫는 것이 곧 부처다. 


그렇다면 견성한 사람은 전부 부처인가? 그렇다. 


부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하거나, 엄청나거나, 신비스럽거나, 신통방통한 능력을 갖춘 그런 분이 아니다. 


그저 자성을 확인한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바라는 것처럼 깨닫고 나면 신비한 능력이 생겨나고, 모르는 일도 다 알게 되고, 몸도 건강해지고, 남들 병도 치유해주고, 무엇이든 다 이루게 해 줄 수 있는 능력도 생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깨달음에 대한 가장 큰 오해다. 


이런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편견들이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장 큰 방해의 주범이다. 

 

이런 것을 깨달음이라고 믿게 되면, 믿는 바대로 이루어진다. 


바른 깨달음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었던 환영과 신기루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것은 참된 진리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허구의 허망한 능력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외도(外道)의 신통력이다. 


외도들은 그런 것을 신통력이라고 여기고, 그것이 깨달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불법을 깨닫는 것은 본래 있던 자리를 그저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평범해지고, 자연스러워질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달라질 것이 없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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