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먼지 티끌이 묻겠는가?

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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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되는 모든 대상들은 무수히 많다. 


더 좋고 더 나쁜 것들, 더 좋은 조건과 더 나쁜 조건들, 더 높고 더 낮은 이들, 더 훌륭하거나 더 열등한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 모든 분별과 차별심이 일어나고 있는 본 바탕,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있어서 그런 분별과 차별이 일어나는가? 


번뇌 망상이 올라온 그 자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언가가 일어나려면 그 일어난 배경, 바탕, 본체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이 서 있으려면 설 땅이 있어야 하고, TV에서 화면이 나오려면 브라운관이 있어야 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스케치북이 있어야 한다. 


번뇌 망상이 올라오려면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 


나와 세상, 이 우주 삼라만상이 이렇게 드러나려면 그 바탕에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이 바로 ‘이것’이다. 자성이다. 

 

선의 관심은 분별되는 무수한 대상에 있지 않고, 그 모든 분별이 일어나고 있는 그 당처(當處), 그 본 바탕에 있다. 


마치 허공과도 같이 텅 비어 있지만, 그 모든 삼라만상을 일어나게 하는 배경, 그 모든 존재가 되돌아가는 귀의(歸依)의 자리, 그 모든 것 전부를 포함하면서 그 어떤 것도 아닌 하나임의 ‘이것’이 바로 선이고, 자성이며, 불성이다. 


바로 이 말로 할 수 없는, 분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혜능은 자신의 게송에서 밝히고 있다. 


 ‘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으니,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먼지 티끌이 묻겠는가?’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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