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나 사나 불성의 작용이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2024-06-03
조회수 649
27
5
KK럭키2024-06-03 22:32
이 몸과 모든 내외의 경계는 인연생 인연멸 하는 무상한 것이고 그 배경, 근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선지식의 말씀처럼 그림이 그려지려면 도화지와 같은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불교를 접하기 전에는 삶이 꽤나 무거웠다면 지금은 불성대로 나답게 자연스럽게 하는듯 안하는듯 살아지는게 신기합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 일하면서 예전 같았으면 복잡하며 스트레스 받던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스레 하다보니 저절로 되더군요.. 일하면서도 불성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문득 느끼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회사에 간다는게 너무 스트레스 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회사에 수행하러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따뜻한 햇빛에 그저 감동하고 가족의 배웅 받으며 출근하는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나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동안 불성아닌 불성도 모르고 허상에 붙잡힌채 자승자박한 것이겠지요..
바른 가르침 들려주신 선지식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선지식의 말씀처럼 그림이 그려지려면 도화지와 같은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불교를 접하기 전에는 삶이 꽤나 무거웠다면 지금은 불성대로 나답게 자연스럽게 하는듯 안하는듯 살아지는게 신기합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 일하면서 예전 같았으면 복잡하며 스트레스 받던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스레 하다보니 저절로 되더군요.. 일하면서도 불성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문득 느끼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회사에 간다는게 너무 스트레스 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회사에 수행하러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따뜻한 햇빛에 그저 감동하고 가족의 배웅 받으며 출근하는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나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동안 불성아닌 불성도 모르고 허상에 붙잡힌채 자승자박한 것이겠지요..
바른 가르침 들려주신 선지식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봄봄🌸🌷2024-06-03 22:29
넵! 감사드립니당~~♡
이 오온의 기능? 작용은 불성이 가능하게 한다는 말씀... 매순간이나 또한 이어지게 하는 인식작용도 불성이나 홀로 서서 삶의 깊은 애환을 돌이켜 보며 덧없는 살이를 보며 또 열심 살아여^^;;; 아니고 그냥 살아여~^.............^ 씨익
이 오온의 기능? 작용은 불성이 가능하게 한다는 말씀... 매순간이나 또한 이어지게 하는 인식작용도 불성이나 홀로 서서 삶의 깊은 애환을 돌이켜 보며 덧없는 살이를 보며 또 열심 살아여^^;;; 아니고 그냥 살아여~^.............^ 씨익

육조혜능-남악회양-마조스님으로 이어지는 마조의 법을 '홍주종'이라 불렀습니다.
지눌스님은 절요에서 홍주종의 대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홍주종의 대의는 마음을 일으켜 한 생각 움직이고, 손가락을 튕기고, 눈을 깜빡거리는 이 모든 것이 다 불성 전체가 쓰이는 것이지, 다른 쓰임새는 없다.
탐진치로 선과 악을 짓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 전체가 다 불성이다...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이 몸의 뼈와 살... 등은 어느 하나 스스로 말하거나 보고 움직이지 못하니...
말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다 불성인 줄 반드시 알라...
그 바탕의 성품을 찾고자 하면, 눈이 스스로 눈을 보지 못하듯 끝내 볼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다...
다만 이 마음에 맡길 뿐이니, 곧 이것이 도를 닦는 수행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홍주종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생각생각이 모두 온전한 진여심임을 깨달음으로 삼고, 그 마음에 모든 것을 내맡김을 도 닦는 수행으로 삼는다.'
이것이 육조혜능과 남악회양, 마조도일의 선법입니다.
이 아침 창 밖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는데요, 이 새소리가 바로 불성이고, 새소리를 듣는 것이 바로 불성입니다.
파도가 곧 바다이듯, 번뇌망상이라는 한 생각이 올라오는 것 자체가 그대로 불성입니다.
하루 일거수 일투족 모든 것들이 불성의 쓰임입니다.
이 몸이 움직이고, 뇌가 생각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이 몸은 지수화풍의 모인 것일 뿐이어서, 말하고 듣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 한물건이 있어서, 이것이, 이 마음이, 이 불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나와 세상 뒤에서 나와 세상을 움직이는 불성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눈 깜빡이는 것이 곧 불성이지, 따로 불성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눈 깜빡이는 이것이 불성이라고 이해하면, 그것은 불성이 아닙니다.
이것, 불성은 눈이 눈을 보는 것과 같아서, 눈이 눈을 보지 못하듯, 불성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쓰임을 통해 매 순간 분명히 확인될 뿐이지요.
이 자리에 일체를 내맡기는 것이 홍주종의 수행입니다.
일체를, 삶을 통째로 이 자리 불성에 내맡기고, 마음 편히 사십시오.
죽으나 사나 불성의 작용이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