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것’ 하나가 드러나 있다

202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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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와 신수의 게송에서 신수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늘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 티끌이 묻지 않도록 하라.’

 

전형적인 방편의 길, 수행의 길이다.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서는 온갖 수행과 방편의 공부를 설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방편 수행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고해바다를 건너는 뗏목과 같은 것이다. 


고통바다를 건너간 사람이라면 수행이라는 뗏목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신수는 여전히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 아직 고해바다를 건너지 못한 것이다. 


몸과 마음을 둘로 나누고 있으며, 중생과 부처를 둘로 나누고 있다. 


털고 닦아서 티끌이 묻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력을 통해 부처라는 ‘저 언덕’에 이르러야 한다.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아 모든 것을 비추지만, 거울에 먼지 티끌이 묻으면 사물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으며, 때에 묻은 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마음 거울을 부지런히 털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 사물을 마음의 분별로써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마음의 때를 닦으라는 것이다. 

 

물론 이 게송은 중생의 입장에서라면 꼭 필요한 방편의 가르침일 수도 있다. 


이런 수준의 방편이 근기가 낮은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래서 오조스님께서는 신수라는 교수사를 욕 먹이기보다, 벽에 쓴 신수의 게송을 남겨 두어 사람들로 하여금 읽고 외우게 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따로 신수를 불러,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게송임을 말씀해 주신다.

 

이 게송은 여전히 둘로 나뉘는 분별법이고,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게송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견해로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면 결정코 얻을 수 없다.

 

무상보리(無上菩提)는 모든 순간에 언제나 드러나 있고, 삼라만상에 막힘이 없다.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갈 필요가 없다. 


지금 여기에 이미 누구에게나 막힘없이 다 드러나 있고,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목전(目前)에, 이 삼라만상 속에 언제나 ‘이것’ 하나가 드러나 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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