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현실은 가난하지만, 가슴 속에서 뜨겁게 ‘부자’가 되길 원하며, 부자를 꿈꾸는 마음이 생겼다고 생각해 보자. 내 외적인 현실은 가난하다. 그러나 내면의 현실은 부자를 원한다. 외적인 현실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내적인 현실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그 자기 내면의 소리를 귀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그 또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이루려면 인연이 화합해야 과보가 생긴다.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緣)은 보조적인 원인이다. 쉽게 말하면 내 마음 속에서 부자를 꿈꾸는 마음, 그래서 부자가 되기로 결심한 마음은 인이다. 그러나 그 인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연이 도와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 인을 귀하게 여겨, 그 인을 펼쳐내야 한다. 다만, 이 연기법에서 중요한 것은 인 혼자만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보조적인 연이 도와야만 가능하다는 점이 키 포인트다. 그러나 연이 나를 도와줄지 안 도와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중중무진(重重無盡) 연기는 말 그대로 무수히 많은 인연들이 결과를 꽃피우게 하는 것이기에,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내가 부자를 원하는 인이 있다면, 그 또한 인연이니 부자를 위해 노력하고, 시도해야 하지만, 그 인을 연이 도와줄지 안 도와줄지는 모르기 때문에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무엇이든 부자가 되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 부자가 되도록 노력하라. 다만 결과에 대한 집착은 버려라. 결과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집착 없이 행하는 자는 결과에 부담이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행하지만, 삶은 가볍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살지만, 가볍고, 무엇이 오든 받아들이며, 결과에는 연연해 하지 않는다.
글쓴이:법상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현실은 가난하지만, 가슴 속에서 뜨겁게 ‘부자’가 되길 원하며, 부자를 꿈꾸는 마음이 생겼다고 생각해 보자. 내 외적인 현실은 가난하다. 그러나 내면의 현실은 부자를 원한다. 외적인 현실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내적인 현실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그 자기 내면의 소리를 귀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그 또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이루려면 인연이 화합해야 과보가 생긴다.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緣)은 보조적인 원인이다. 쉽게 말하면 내 마음 속에서 부자를 꿈꾸는 마음, 그래서 부자가 되기로 결심한 마음은 인이다. 그러나 그 인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연이 도와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 인을 귀하게 여겨, 그 인을 펼쳐내야 한다. 다만, 이 연기법에서 중요한 것은 인 혼자만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보조적인 연이 도와야만 가능하다는 점이 키 포인트다. 그러나 연이 나를 도와줄지 안 도와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중중무진(重重無盡) 연기는 말 그대로 무수히 많은 인연들이 결과를 꽃피우게 하는 것이기에,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내가 부자를 원하는 인이 있다면, 그 또한 인연이니 부자를 위해 노력하고, 시도해야 하지만, 그 인을 연이 도와줄지 안 도와줄지는 모르기 때문에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무엇이든 부자가 되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 부자가 되도록 노력하라. 다만 결과에 대한 집착은 버려라. 결과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집착 없이 행하는 자는 결과에 부담이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행하지만, 삶은 가볍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살지만, 가볍고, 무엇이 오든 받아들이며, 결과에는 연연해 하지 않는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