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십팔계(2) - 마음이 ‘나’라는 착각
2024-11-21
조회수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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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럭키2024-11-21 23:40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육근도 육경도 육식도 오온 십이처 십팔계도 모두 허상입니다.
나와 너 그리고 일체 모든 것에 이름 짓고 모양을 갖다 붙이면 허상입니다.
태양은 내가 태양이라 한 적이 없습니다.
달은 내가 달이라 한 적이 없습니다.
* * * 은 태어날 때 내가 * * * 이라 한 적이 없습니다.
태어날 때 누군가의 분별망상으로 * * * 이라 이름 붙였을 뿐
태어나고 살아오면서 일체 모든 것에 누군가가 갖다 붙인 이름과 모양을 학습하였을 뿐
거꾸로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일체 모든 것에 이름과 모양을 빼면 어떨까요?
실상은 그저 있는 그대로 이대로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원만구족 할 뿐입니다.
일체 모든 것을 인간의 잣대로 누군가의 잣대로 뭐라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근원의 측면에서 우주와 대지의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요?
인간의 분별망상이 온갖 이름과 모양을 갖다 붙일 뿐
현실은... 즉 실상은 모든 80억 인간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모를 뿐입니다.
제법실상입니다.
있는 이대로가, 경험되는 현실이 진리입니다.
좋든 싫든 그것이 진리입니다.
좋든 싫든 아는 그놈이 진리입니다.
그놈이든 진리든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고 안 보려야 안 볼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뭐 따로 구하거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진리고 그놈이고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저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육근도 육경도 육식도 오온 십이처 십팔계도 모두 허상입니다.
나와 너 그리고 일체 모든 것에 이름 짓고 모양을 갖다 붙이면 허상입니다.
태양은 내가 태양이라 한 적이 없습니다.
달은 내가 달이라 한 적이 없습니다.
* * * 은 태어날 때 내가 * * * 이라 한 적이 없습니다.
태어날 때 누군가의 분별망상으로 * * * 이라 이름 붙였을 뿐
태어나고 살아오면서 일체 모든 것에 누군가가 갖다 붙인 이름과 모양을 학습하였을 뿐
거꾸로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일체 모든 것에 이름과 모양을 빼면 어떨까요?
실상은 그저 있는 그대로 이대로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원만구족 할 뿐입니다.
일체 모든 것을 인간의 잣대로 누군가의 잣대로 뭐라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근원의 측면에서 우주와 대지의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요?
인간의 분별망상이 온갖 이름과 모양을 갖다 붙일 뿐
현실은... 즉 실상은 모든 80억 인간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모를 뿐입니다.
제법실상입니다.
있는 이대로가, 경험되는 현실이 진리입니다.
좋든 싫든 그것이 진리입니다.
좋든 싫든 아는 그놈이 진리입니다.
그놈이든 진리든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고 안 보려야 안 볼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뭐 따로 구하거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진리고 그놈이고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저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iris2024-11-21 22:26
육식이라는 분별심으로 대상을 명색으로 인식하게 된다
글 감사합니다❤️
의도와 욕망을 지닌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이 붙잡을
명색이라는 대상이 출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깥에 실재하는 객체가 아닌, 다만 마음 안의 화합이며
무명이 밝아지면 사라지는 세계입니다
글 감사합니다❤️
의도와 욕망을 지닌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이 붙잡을
명색이라는 대상이 출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깥에 실재하는 객체가 아닌, 다만 마음 안의 화합이며
무명이 밝아지면 사라지는 세계입니다
lelekem2024-11-21 11:10
육식의 대상화로 인해 생겨난 명색에서 괴로움을 봅니다. 인연따라 흘러가는 외부를 육식으로 이리저리 분별하느라 집착했습니다. 인연에 맡기고 마음을 내려놓겠습니다. 🪷
우리는 보통 육식(六識)을 ‘마음’이라고 이해하며, 이는 ‘대상을 분별해서 아는 마음’이다. 내가 세상을 접촉하면서 받아들여 인식하다 보니 내 안에 ‘마음’ 혹은 ‘의식’이라는 것이 별도로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눈이라는 신체의 시각기관을 통해 내 안에 실재하고 있는 마음[의식]이 본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봐서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놈[마음]’이 있다고 여기게 되고, 그 인식하는 마음을 ‘식(識)’이라고 부른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도 ‘듣는 마음[耳識]’이 있다고 여기며, 맛보고 냄새 맡고 감촉을 느끼고 생각할 때도 각각 그것을 인식하는 ‘식[마음]’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 식을 나의 주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육식이 일어나는 것은, 의식 주체가 내 안에 진짜로 있어서 눈으로 볼 때 안식계 등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십이입처라는 허망한 착각으로 대상을 인식할 때 인연 따라 생겨나는 것일 뿐이다. 인연 따라 허망하게 생겼다가 사라지는 공한 것일 뿐이지만, 중생들은 어리석은 착각으로 인해 그것이 내 안에 있는 ‘식(識)’이라는 실체로 여기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식을 내 안에 영혼처럼 생각하면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지속되는 실체로 여기고, 나아가 죽고 난 다음에도 다음 생을 받는 영원한 존재라는 주장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유식사상은 이 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제7말나식(第七末那識)과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설까지 식사상을 확대시키고 있다.
이렇게 내 안에, 대상을 분별해서 의식하는 마음인 식이 있다는 육식의 분별심이 생기면, 내 바깥에는 이름과 형태를 가진 식의 대상 즉 명색(名色)이 있다는 생각이 만들어진다. 육식이라는 분별심이 대상을 이름 붙여 인식하고(名) 형태로써 인식하게(色, 相)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육식의 대상을 경전에서는 명색이라고 부른다. 육근의 대상은 육경이지만, 육식의 대상은 명색이 되는 것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