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무분별과 불이중도
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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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럭키2024-12-13 22:24
중생이 있기에 부처가 있고, 부처가 있기에 중생이 있습니다.
서로가 기대어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는 인연가합의 존재입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가 없고, 부처가 없으면 중생이 없습니다.
서로가 기대어 있지 못할 땐 존재할 수 없는 인연가합의 존재입니다.
둘은 따로가 아닌 하나입니다.
일체 모든 분별이 하나입니다.
일체 모든 분별을 어디서 만들었을까요?
안팎에서? 점쟁이가? 신이? 우주가?
그런데 안팎과 점쟁이와 신과 우주를 아는 그놈은 누구인가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그놈은 누구인가요?
'모를 뿐'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서로가 기대어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는 인연가합의 존재입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가 없고, 부처가 없으면 중생이 없습니다.
서로가 기대어 있지 못할 땐 존재할 수 없는 인연가합의 존재입니다.
둘은 따로가 아닌 하나입니다.
일체 모든 분별이 하나입니다.
일체 모든 분별을 어디서 만들었을까요?
안팎에서? 점쟁이가? 신이? 우주가?
그런데 안팎과 점쟁이와 신과 우주를 아는 그놈은 누구인가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그놈은 누구인가요?
'모를 뿐'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사실은 곧 ‘이것’과 ‘저것’은 서로에게 기대어 있음으로써 존재함을 뜻한다. 곧 ‘이것’과 ‘저것’은 떼어 놓으려고 해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 즉 ‘하나’임을 뜻한다. ‘이것’은 ‘저것’에 의해 ‘이것’일 수 있고, ‘저것’은 ‘이것’에 기대어 ‘저것’일 수 있다. ‘이것’과 ‘저것’은 동시생(同時生) 동시멸(同時滅)이다. 불이(不二)의 관계다.
이것을 확장해 보면, ‘나’는 ‘너’에 의해 ‘나’일 수 있으니, ‘나’와 ‘너’는 둘이 아닌 하나다. ‘크다’는 ‘작다’에 의해 ‘크다’일 수 있으니, ‘크다’와 ‘작다’는 둘이 아닌 하나다. ‘나’는 ‘나 아닌 것들’에 의해 ‘나’일 수 있으니, ‘나’와 ‘나 아닌 것들’은 둘이 아니다. ‘나’는 ‘나 아닌 것들’ 즉 이 우주만물 전체와 둘이 아닌 하나다.
이러한 연기적인 지혜 없이 세상을 보면, 세상은 나와 너, 아군과 적군,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앞뒤, 고저, 대소, 장단 등 무수히 많은 둘로 분별되지만, 이 연기적인 지혜에서 그 양 변인 것처럼 보이는 극단은 사실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연기적인 지혜가 없는 중생들은 ‘하나’인 진실은 보지 못한 채, ‘이것’이 아닌 ‘저것’에만 집착하고, ‘이것’을 버리고, ‘저것’만을 취하려고 애쓴다. 이와 같이 분별과 취사간택심(取捨揀擇心)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연기법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연기법으로 세상을 보면 차별심을 버리게 되고[무분별(無分別)], 세상을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정견(正見)], 치우치지 않게 보게 되고[중도(中道)], 온 우주 삼라만상은 분별없는 대평등심의 하나라는 진실이 드러난다.
그럼으로써 ‘이것’과 ‘저것’의 양 변을 나누고 분별하고 차별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 어느 것도 취하거나 버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허용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