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은 내가 아니다
20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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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럭키2025-10-16 21:51
지금의 몸뚱이는 하루 전과 다릅니다.
하루 전의 몸뚱이는 일주일 전과 다릅니다.
일주일 전의 몸뚱이는 한 달 전과 다릅니다.
한 달 전의 몸뚱이는 일 년 전과 다릅니다.
일 년 전의 몸뚱이는 10년 전과 다릅니다.
10년 전의 몸뚱이는 태어났을 때와 다릅니다.
그런데.. 참으로 불가사의하지요.
제행무상하게 평생토록 변해가는 그 몸뚱이를 보는 이것은 시공을 초월해 늘 여여하군요.
도대체가 이것은 무엇입니까?
선지식께 법을 청할 뿐입니다.
하루 전의 몸뚱이는 일주일 전과 다릅니다.
일주일 전의 몸뚱이는 한 달 전과 다릅니다.
한 달 전의 몸뚱이는 일 년 전과 다릅니다.
일 년 전의 몸뚱이는 10년 전과 다릅니다.
10년 전의 몸뚱이는 태어났을 때와 다릅니다.
그런데.. 참으로 불가사의하지요.
제행무상하게 평생토록 변해가는 그 몸뚱이를 보는 이것은 시공을 초월해 늘 여여하군요.
도대체가 이것은 무엇입니까?
선지식께 법을 청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 몸을 ‘나’라고 여기기에 몸이 늙어가거나 아프게 될 때, 세상이 나를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을 잃게 된다.
우리는 이 몸이 진짜 내가 아님에도 진정한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므로, 이 몸이 늙어갈 때 스스로 위축되고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이 늙고 퇴화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이 몸은 내가 아니다.
이 몸이 ‘나’라는 착각에서만 벗어난다면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다.
진정한 나는 몸에 제한되지 않으며, 나이에 구속되지 않는다.
젊거나 늙은, 남자이거나 여자인, 잘났거나 못난, 크거나 작거나, 가난하거나 부자인, 건강하거나 늙어가는 그러한 분별되는 것들은 진정한 ‘나’가 아니다.
그러니 나를 이 몸과 동일시하는 마음은 어리석음이다.
진짜 나는 겉으로 보이는 얼굴과 몸 너머에 있다.
법문을 들으며 홀로 걷거나, 고요히 걷기만 할 때, 높은 산을 오르느라 숨이 헉헉 차오를 때, 그러할 때 우리는 이 몸 너머의 진정한 나를 느낄 수 있다.
묵연히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실은 우리는 늘 그것과 함께 있다.
이렇게 누구나 진정한 자기와 늘 함께 하기 때문에, 이것을 거창하게 깨달음이라고 말할 것조차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 공부를 통해 진정한 ‘나’를 알아내기만 한다면,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게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늙어가는 이 몸이, 죽음이 진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므로, 더 이상 노병사를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늙고 죽음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