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촉(觸)

2024-11-01
조회수 154

5efa75908d567.jpg


육입을 조건으로 해서 촉이 있다. 촉이란 육입을 ‘나’라고 생각하면서 나에 의해 접촉되는 것들이 외부에 실제로 ‘있다’는 착각을 하는 허망한 의식이다. 식과 명색과 육입, 즉 십팔계가 접촉하는 것, 인연따라 화합하는 것이 바로 촉이다. 촉을 촉입처(觸入處)라고도 부르며, 입처란 곧 허망한 의식임을 뜻한다.

내가[육입=육내입처] 대상을[명색=육외입처] 보자마자[촉=접촉] 의식[육식]이 생겨나는 과정은 연기적으로 동시에 일어난다. 눈으로 색을 보는 접촉, 귀로 소리를 듣는 접촉 내지 뜻으로 생각을 일으키는 접촉을 ‘촉’이라고 하며, 이러한 접촉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허망한 의식을 일으킨다.

이 촉입처 또한 멸해야할 허망한 의식이다. 촉을 멸한다는 것은 눈으로 대상을 보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접촉을 하지만 접촉하는 무언가가 실재 존재한다는 허망한 착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사실로써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지라도 자신이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고, 환영을 본 것일 수도 있다. 귀로 똑똑히 들었다고 할지라도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전날 밤에 길을 걷다가 뱀을 보고 놀라 먼 길로 돌아갔는데, 그 다음 날 보니 그것이 새끼줄이었다면, 그 뱀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다. 단지 그렇게 내가 실제로 보고 접촉했다고 해서 실제로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촉 또한 허망한 의식일 뿐이며, 소멸해야 할 의식이다. 촉입처가 소멸하면 우리는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다 있다고 착각하지 않을 것이다.

촉입처가 멸하면, 실체화하는 허망한 착각이 사라지기에, 십이연기의 촉 다음 지분인 ‘수(受)-애(愛)-취(取)’ 즉 느낌과 애욕과 집착이 연이어 무성하게 생겨나는 것을 차단시킨다. 실재 존재한다는 착각 때문에 느낌, 애욕, 취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재가 아님을 알면 수-애-취 또한 연이어 소멸되게 된다.



글쓴이:법상

22 1

목탁소리 본찰 상주 대원정사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판곡2길 31 대원정사

(우) 37144 (지번) 판곡리 87-1 

전화번호| 스마트 전화 0507-1421-7839


목탁소리 부산센터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1로 25-1 더에이치빌딩 8층 목탁소리

(우)48095 (지번) 중동 1378-11

스마트 전화 0507-1481-7843


접수문의 총무처 010-9700-7811 (문자만)


Copyright ⓒ 2021 목탁소리 All rights reserved.

이용약관  |  개인정보방침찾아오시는 길 후원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