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내가 오염될 때와 깨끗할 때

20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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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육근은 끊임없이 외부 경계에 따라 휘둘리고 사로잡힌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외부 경계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언제나 여여하게 오고 갈 뿐이다. 문제는 그러한 중립적인 현상에 대해 분별하고, 해석하며, 휘둘리고, 사로잡히며, 오염되는 우리 마음에 있다.

겨울이 춥고, 여름이 더우며, 비 오는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겨울은 좋고 여름은 싫다거나, 바람 부는 날은 좋고 비 오는 날은 싫다거나 하며 외부 경계를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판단분별하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홍어의 푹 삭은 냄새와 맛을 좋아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죽어도 못 먹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사랑하는 이와 손을 맞잡을 때는 한없이 설레지만, 음침한 한 밤중에 낯선 이가 손을 잡으면 까무러칠 수도 있다.

이처럼 외부 경계는 고정된 실체로써 좋고 나쁘다는 분별이 없지만, 내 쪽에서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서 온갖 문제도 만들어내고, 애착도 만들어낸다. 똑같은 경계가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는 행복감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난 괴로움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같은 경계를 언제, 어떤 상태일 때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괴롭거나 행복해지기도 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일지라도 너무 배가 부를 때는 싫어지는 것처럼.

이처럼 우리의 육근은 외부의 경계를 대상으로 언제나 똑같이 감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내적 상태에 따라 동일한 외부 경계도 어떤 때는 좋게 느끼고, 어떤 때는 나쁘게 느낀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육근이다. 있는 그대로의 중립적인 대상 경계를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분별하여 좋다거나 나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처럼 중생의 육근은 늘 오염되어 있다. 육경에 오염되고, 육경에 끌려다니며, 육경에 휘둘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육근은 어떨까? 부처님의 육근은 청정하기 때문에, 언제나 외부의 경계를 있는 그대로 중도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언제나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겨울이든 여름이든, 그 어떤 소리든, 향기든, 맛이든, 감촉이든 다만 있는 그대로의 경계를 있는 그대로 분별없이 본다. 분별없이 보기 때문에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으며, 판단하지 않기에 마음이 오염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분별없이 본다는 것은, 대상이 좋은지 나쁜지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쁜 것을 다 알면서도 거기에 끌려가거나, 실체화하지 않음으로써, 그 경계에 끌려가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를 ‘보되 봄이 없이 본다’거나, ‘하되 함이 없이 한다’고도 하고, 분별하되 분별함이 없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처럼 참된 육근청정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집착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을 다 하되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깨어있는 행이다.

이러한 육근청정의 상태를 경전에서는 육근을 잘 조복 받는다고도 하며, 육근을 수호한다거나 육근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맛지마 니까야』에서는 “눈은 보이는 것에 즐거워하며... 귀는 소리를 듣고 즐거워하며, 코는 냄새를 맡고 즐거워하고, 혀는 맛에 탐닉해 즐거워하며, 몸은 감촉에서 즐거워하고, 마음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상에 따라 즐거워한다. 여래는 이 육근을 잘 길들였고, 수호하였으며, 조복 받고, 절제하였다.”라고 함으로써, 육근을 잘 수호하고 지켜 청정하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불교수행의 중요한 부분임을 설하고 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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