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삶은 끊임없이 어떤 업을 짓고 어떤 복을 짓느냐에 따라서 매 순간 궤도를 수정하고 있다. 이렇게 업은 전면적으로 궤도 수정이 가능한데,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떻게 하면 그 업을 바꿀 수 있을까?
첫째, 복을 짓고 선을 짓는 것, 즉 복덕을 늘려가는 것이다.
둘째, 마음공부와 중도라는 참된 수행을 통해 지혜를 늘려가는 것이다. 사실은 지혜를 늘린다기 보다, 본래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던 지혜를 되찾는 것이다.
불교는 복덕과 지혜를 증장시키는 종교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불하고 삼보(三寶)에 귀의할 때, ‘귀의불(歸依佛) 양족존(兩足尊)’이라고 하는데, 이는 ‘두 가지가 구족되어 존귀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바로 이 두 가지가 복덕과 지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가 바로 복을 짓는 일과 지혜를 닦는 일이다.
첫째, 몸과 말과 생각이라는 3가지 도구(三業)를 통해 복덕을 짓는 것이다. 신구의 삼업으로 선행을 할 때 선의 과보를 받고, 악행을 할 때 악의 과보를 받는 것이 인과응보다. 지혜로운 생각, 예쁜 말씨, 자비로운 행동으로 세상을 향해 청정하고 복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복덕과 보시행은, 법시(法施), 재시(財施), 무외시(無畏施)라는 3가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하는 것이다. 재물을 나누면 풍요로운 재물로 돌아오고, 불법을 보시하는 법시를 통해 지혜를 깨닫게 되며, 일체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을 통해 본래 두려울 것이 없는 참된 지혜를 깨닫게 된다. 이런 보시와 나눔을 실천하되, 내가 했다는 생각이 없을 때, 그것은 더욱 큰 과보가 되어 돌아온다.
둘째, 지혜를 실천한다는 것은, 올바른 법문을 들어 안목을 밝히고, 기도와 수행, 명상의 삶을 살아나가며, 내가 공한 줄 알아 무아(無我)의 삶을 통찰함으로써 저절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이 사라지는 삶이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곧 붓다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모든 괴로움에서 확연히 벗어나는 것이며, 생사해탈이라는 말처럼, 죽음을 넘어서는 길이다. 이 몸이 내가 아니며, 나와 세계는 둘이 아니고, 그렇기에 나는 나고 죽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다. 모든 일을 다 하면서도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집착할 것이 없고, 모든 질문이 사라진다.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걸림 없이, 집착과 화 없이, 가볍게 주어진 삶을 살아나간다.
사실 이 지혜는 우리 모두에게 본래 갖추어진 것이기에, 문득 깨닫기만 하면 된다. 지혜를 깨닫게 되면, 사실 복덕 또한 본래 구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 이상 복을 닦고, 선을 쌓으며, 수행을 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이 다 구족되어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근원에서 복과 지혜는 둘이 아니다.
복과 지혜야말로, 우리가 세간에서 또 출세간에서 해야 할 궁극적인 2가지 실천이다. 더 이상은 없다.
글쓴이:법상
이렇게 삶은 끊임없이 어떤 업을 짓고 어떤 복을 짓느냐에 따라서 매 순간 궤도를 수정하고 있다. 이렇게 업은 전면적으로 궤도 수정이 가능한데,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떻게 하면 그 업을 바꿀 수 있을까?
첫째, 복을 짓고 선을 짓는 것, 즉 복덕을 늘려가는 것이다.
둘째, 마음공부와 중도라는 참된 수행을 통해 지혜를 늘려가는 것이다. 사실은 지혜를 늘린다기 보다, 본래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던 지혜를 되찾는 것이다.
불교는 복덕과 지혜를 증장시키는 종교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불하고 삼보(三寶)에 귀의할 때, ‘귀의불(歸依佛) 양족존(兩足尊)’이라고 하는데, 이는 ‘두 가지가 구족되어 존귀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바로 이 두 가지가 복덕과 지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가 바로 복을 짓는 일과 지혜를 닦는 일이다.
첫째, 몸과 말과 생각이라는 3가지 도구(三業)를 통해 복덕을 짓는 것이다. 신구의 삼업으로 선행을 할 때 선의 과보를 받고, 악행을 할 때 악의 과보를 받는 것이 인과응보다. 지혜로운 생각, 예쁜 말씨, 자비로운 행동으로 세상을 향해 청정하고 복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복덕과 보시행은, 법시(法施), 재시(財施), 무외시(無畏施)라는 3가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하는 것이다. 재물을 나누면 풍요로운 재물로 돌아오고, 불법을 보시하는 법시를 통해 지혜를 깨닫게 되며, 일체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을 통해 본래 두려울 것이 없는 참된 지혜를 깨닫게 된다. 이런 보시와 나눔을 실천하되, 내가 했다는 생각이 없을 때, 그것은 더욱 큰 과보가 되어 돌아온다.
둘째, 지혜를 실천한다는 것은, 올바른 법문을 들어 안목을 밝히고, 기도와 수행, 명상의 삶을 살아나가며, 내가 공한 줄 알아 무아(無我)의 삶을 통찰함으로써 저절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이 사라지는 삶이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곧 붓다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모든 괴로움에서 확연히 벗어나는 것이며, 생사해탈이라는 말처럼, 죽음을 넘어서는 길이다. 이 몸이 내가 아니며, 나와 세계는 둘이 아니고, 그렇기에 나는 나고 죽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다. 모든 일을 다 하면서도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집착할 것이 없고, 모든 질문이 사라진다.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걸림 없이, 집착과 화 없이, 가볍게 주어진 삶을 살아나간다.
사실 이 지혜는 우리 모두에게 본래 갖추어진 것이기에, 문득 깨닫기만 하면 된다. 지혜를 깨닫게 되면, 사실 복덕 또한 본래 구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 이상 복을 닦고, 선을 쌓으며, 수행을 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이 다 구족되어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근원에서 복과 지혜는 둘이 아니다.
복과 지혜야말로, 우리가 세간에서 또 출세간에서 해야 할 궁극적인 2가지 실천이다. 더 이상은 없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