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이 생기지 않으면, 그 자리가 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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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心)과 경계(境)에 밝으면, 망상은 생기지 않는다. 


망상이 생기지 않으면, 그 자리가 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마조어록]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밝고, 대상 경계에 대해서도 지혜롭게 안다면, 즉 나와 세상에 완전히 밝아져 안다면 더 이상 망상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진짜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몸을 나라고 여겨 '나는 여자야, 나는 늙었어, 나는 잘났어, 못났어...' 이렇게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들은 다 망상이다. 


매 순간을 통찰해 보면 진정 그런 일들은 본래 없다.


우리는 당연히 생각이라는 필터로 세상을 걸러서 보고 있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생각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보면, 실제로 늙고 잘났고 못난 내가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전보다 천천히 움직이는 이 몸이 경험될 뿐이다.


모든 생각을 빼고 곧장 이 순간에 즉해서 통찰하면 그저 무언가 움직이고 있는 작용만이 알아차려질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여기로 곧장 돌아와서 생각, 말, 언어, 개념들을 모두 다 버리고 해석없이 지금 여기 보이고 들리는 것을 보고 들을 때, 어떤 모양도 소리도 아닌 그냥 어떠한 작용이 느껴질 뿐이다. 


그 모양과 소리와 나의 눈, 귀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이 모양과 이 소리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생겨난 모양과 소리와 나는 따로 둘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곧 나다.


지금 여기서 (죽비를 치시며) 이 인연을 화합해 주는 행위를 통해서, 듣는 나와 이 소리가 지금 여기서 생겨난 것이지, 전부터 살아오고 있던 내가 지금 이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보고 들음이 경험될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에 밝아지는 것, 마음이 무엇인지에 밝아지는 것이 곧 대상 경계에도 밝아지는 것이다.


밝아진다는 것은 그냥 분별을 다 하며 대상을 보지만 그 분별에 따라가지 않고 보며, 그 대상이 실재가 아님을 알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망상이 생기지 않는다.


망상이 생기지 않을 때 그 자리가 곧 무생법인이다. 


즉 생이 진리가 아니라 무생이 곧 진리이다. 


생겨났으나 생겨난 바가 없는 것이 무생이며 그것이 진리라는 말이다. 


무생인 줄 알지만 생한 바가 있는 것들은 그것대로 다 쓰고 살 줄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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