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공덕
2025-11-25
조회수 27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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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11-25 22:30
참된 행복과 열반,
참된 공덕은 자성을 깨닫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깨닫기에,
죽음 앞에서 아무런 괴로움이 없다
글 감사합니다❤️
모든 우상은 쇠약해지고 바스러지고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우상에는 생명이 없기에 반드시 무너진다
생명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상에 기대지 말라
너 자신의 밖에서 구하지 말라
하느님은 너의 내면에 사시고, 너의 완성은 하느님 안에 있다
너는 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하느님이 너의 기능을 확고히 정해두셨기 때문이다
죽음은 없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자신의 창조주가 주신 기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능이 죽는 것일 수는 없다
생명의 기능은 생명의 확장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천부적 기능으로,
생명은 끝도 없이 영원무궁토록 하나로 존재한다
-A course in Miracles
참된 공덕은 자성을 깨닫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깨닫기에,
죽음 앞에서 아무런 괴로움이 없다
글 감사합니다❤️
모든 우상은 쇠약해지고 바스러지고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우상에는 생명이 없기에 반드시 무너진다
생명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상에 기대지 말라
너 자신의 밖에서 구하지 말라
하느님은 너의 내면에 사시고, 너의 완성은 하느님 안에 있다
너는 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하느님이 너의 기능을 확고히 정해두셨기 때문이다
죽음은 없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자신의 창조주가 주신 기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능이 죽는 것일 수는 없다
생명의 기능은 생명의 확장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천부적 기능으로,
생명은 끝도 없이 영원무궁토록 하나로 존재한다
-A course in Miracles
KK럭키2025-11-25 22:07
다만 견성을 말할 뿐, 선정과 해탈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분별에 들어갈 뿐, 생각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들어가지만 들어간 일이 없습니다.
본래 바다기 때문입니다.
선지식께 법을 청할 뿐입니다.
다만 무분별에 들어갈 뿐, 생각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들어가지만 들어간 일이 없습니다.
본래 바다기 때문입니다.
선지식께 법을 청할 뿐입니다.
hc2025-11-25 21:54
오래전 자성을 확인했어요
시간이 흐르지만
넘 오래 사는 시대에
갑자기 치매에 기억을 사라져갑니다
궁금하네요~♡♡♡
목전이지만 ᆢ
웃으봅니다
그래도 ?
견처는 허공법신일까요
시간이 흐르지만
넘 오래 사는 시대에
갑자기 치매에 기억을 사라져갑니다
궁금하네요~♡♡♡
목전이지만 ᆢ
웃으봅니다
그래도 ?
견처는 허공법신일까요
행복2025-11-25 13:25
감사합니다🙏
누구누구란 이름과 모양으로
그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느라
너무 힘들게 살아가는것 같아요
돌아보면 원래 이런 내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영화 '박하사탕'속 주인공이 기찻길에서
외치던 그 대사 "나 돌아갈래~~"라고 했던
외침처럼 걱정근심없고 순수했던
근원의 나ㆍ청화스님이 '마음의 고향'으로 표현하신 그곳. 고향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들 ...
구순이 넘으신 어느 어르신께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하신말씀은, "인생이란건 그렇게 구비구비 고개를 넘고넘어야 다 살아지는 거야"라고 하신 말씀도 생각나네요~
누구누구란 이름과 모양으로
그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느라
너무 힘들게 살아가는것 같아요
돌아보면 원래 이런 내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영화 '박하사탕'속 주인공이 기찻길에서
외치던 그 대사 "나 돌아갈래~~"라고 했던
외침처럼 걱정근심없고 순수했던
근원의 나ㆍ청화스님이 '마음의 고향'으로 표현하신 그곳. 고향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들 ...
구순이 넘으신 어느 어르신께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하신말씀은, "인생이란건 그렇게 구비구비 고개를 넘고넘어야 다 살아지는 거야"라고 하신 말씀도 생각나네요~


만약 자성(自性)이 어둡다면, 복으로도 그를 구원할 수 없다.
[육조단경]
『육조단경』은 선의 육조(六朝) 혜능스님의 저작이지만, 스님의 저서로는 유일하게 경전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만큼, 선의 교과서와도 같은 중요한 경전이다.
『육조단경』은 끊임없이 자성(自性)을 보는 것, 즉 견성(見性)의 중요성을 설한다.
달마대사가 양 무제에게 절을 짓고, 온갖 복을 짓는다고 할지라도 공덕이 없다고 한 것은 곧 견성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공덕일 뿐, 절을 짓고 보시하는 등의 복덕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복을 아무리 많이 지은들, 참된 공덕은 없다.
복은 복의 결과를 가져올 뿐,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참된 행복과 열반은 가져오지 않는다.
복을 많이 지어서 그 복의 결과 수많은 재물이 들어오고, 소위 대박이 나서 물질적인 큰 풍요를 얻었다고 해 보자.
복을 지은 결과 이런 결과는 당연히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큰 부자도 결국에는 늙고 병들고 죽는다.
노병사 앞에서 그 많은 복의 결과가 다 무슨 소용인가?
참된 공덕은 자성을 깨닫는 것이다.
자성을 깨달아 견성하면, 늙고 병들고 죽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깨닫기에, 죽음 앞에서도 아무런 괴로움이 없다.
그 어떤 현실 생활의 어려움과 괴로운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벌어지는 모든 일들의 본성에 눈떴기 때문에, 괴로움 앞에서 흔들림이 없다.
괴로움은 그를 뒤흔들 수 없다.
죽고 사는 것이 곧 파도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같으니, 바다를 깨달아 바다에 뿌리내리고 있는 이는 어떤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더라도 아무런 상관할 바가 아니다.
파도는 곧 바다로 돌아감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존재의 참된 귀의처(歸依處)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