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2025-11-26
조회수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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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2025-11-27 00:41
시골 어린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사진~
정겹고 순박한 두 아이가 너무 예쁩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팔을 들고 조심조심 걷고 있네요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하고 있는가?
또 무엇이 사진속의 장면을 보고 있는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것은
일체시 일체처에 무엇을 보고 듣든
무슨 행동을 하든지 이것만이 있습니다
색즉시공
모든 모양이 드러난 그곳에 즉하여 이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도망칠래야 도망칠곳이 없습니다
정겹고 순박한 두 아이가 너무 예쁩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팔을 들고 조심조심 걷고 있네요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하고 있는가?
또 무엇이 사진속의 장면을 보고 있는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것은
일체시 일체처에 무엇을 보고 듣든
무슨 행동을 하든지 이것만이 있습니다
색즉시공
모든 모양이 드러난 그곳에 즉하여 이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도망칠래야 도망칠곳이 없습니다
KK럭키2025-11-26 22:39
적진은 둘째치고..
똥 싸고 오줌 싸고 토 하고 피 흘리고 온갖 지옥과 같은 고통에 사무친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성을 볼 것입니다.
선지식께 똥을 청할 뿐입니다.
똥 싸고 오줌 싸고 토 하고 피 흘리고 온갖 지옥과 같은 고통에 사무친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성을 볼 것입니다.
선지식께 똥을 청할 뿐입니다.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자성을 보려고 한다면 말을 듣자마자 곧장 보아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칼을 휘두르며 적진에 돌진할 때라도 여전히 자성을 볼 것이다.
[육조단경]
견성하려면 생각과 분별이 멈춰야 한다.
생각으로는 아무리해도 이 자성을 확인할 수 없다.
설법을 듣고 그 설법을 생각으로 헤아려 이해하는 사람은 벌써 두 번째 자리에 떨어진 것이다.
이 공부는 제일의(第一義)라고 하여, 분별이나 생각으로 헤아리기 이전의 첫 번째 자리다.
첫 번째 자리는 헤아리기 이전이고, 두 번째 자리 이후는 헤아리고 분별된 자리다.
말을 듣고 곧장 생각으로 헤아린다면 자성을 볼 수 없다.
자성을 보려고 한다면 법문을 듣자마자 곧장 자성을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언하대오(言下大悟)라는 선의 오랜 전통이다.
이렇게 몰록 돈오 견성한 사람이라면 삶의 모든 순간에서 자성을 확인하니, 칼을 휘두르고 적진에 돌진하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자성을 본다.
칼을 휘두르며 적진에 돌진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도, 칼도, 칼을 휘두르는 사람도, 아군도 적군도, 이 모두가 바다 위에서 잠시 일어난 파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바다를 확인하고, 내가 곧 바다임을 깨달은 사람은 파도에 연연하지 않는다.
파도가 생겨났더라도 그것이 머지않아 인연이 다하면 바다로 돌아갈 것임을 알기에 그 생겨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