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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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깨달음의 나무이며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부지런히 털고 닦아 먼지가 붙지 않게 하라. 

- 신수(神秀)의 게송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없고, 거울도 경대(鏡臺)가 없다. 본래 한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붙을 수 있겠는가. 

- 혜능의 게송


[육조단경]


육조가 행자의 신분임에도 오랜 교수사였던 신수(神秀, 606∼706) 스님이 아닌 혜능(慧能: 638~713) 스님이 선의 제육조(第六朝)가 된 것은 바로 이 하나의 게송 때문이었다.

 

신수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수행과 좌선의 방식이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거울과 같으니, 마음에 먼지가 묻지 않게 부지런히 털고 닦아야 한다. 


반면 혜능은 깨달음이라고 할 만한 한 물건도 없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니, 먼지가 붙을 무언가가 없고, 그러니 털고 닦을 것도 없다. 


이것이 바로 달마로부터 내려온 조사선(祖師禪)의 종지다. 

 

조사선은 갈고 닦는 수행을 설하지 않는다. 


본래무일물이라 어디에도 먼지 묻을 곳이 없기에, 본래면목은 오염될 것이 없다. 


갈고 닦을 ‘무엇’이 없는데 도대체 뭘 갈고 뭘 닦는다는 말인가? 


갈고 닦아서 얻을 것은 또 무엇인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곧바로 그 마음을 가리켜 보여 자기의 성품을 보아 성불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가르침은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으로, 문자를 따로 내세우지 않으며 경전의 가르침 외에 별도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의 종지다. 

 

이것은 경전이나 교리, 문자 속에 갇힌 불교가 아니다. 


그래서 교외별전이라고 하여 경전과 가르침 이외에 별도로 전해진 마음법이며, 불립문자라 하여 문자를 따로 세우지 않는다. 


경전 없이, 그 어떤 교리나 방법론도 없이, 곧바로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드러내 보여준다.

 

스승이 법문을 통해 직지인심, 곧 그 마음을 곧장 가리켜 보여 주면 제자는 곧바로 통해 언하대오하는 것이야말로 이 선의 전통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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