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지식의 지시(指示)와 가르침에 의지해야만 본성을 볼 수 있습니다

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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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 갖추고 있지만, 다만 마음이 어리석어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모름지기 대선지식의 지시(指示)와 가르침에 의지해야만 본성을 볼 수 있습니다.


[육조단경]


자성, 불성, 마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 


다만 마음이 분별에 뒤덮여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다. 


스스로 이미 갖추고 있는 반야지혜를 보지 못한 채, 자신이 분별로 만들어 놓은 환영 같은 세계를 진짜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본래부터 갖추고 있던 반야지혜를 깨달아 견성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바로 대선지식의 지시(指示)와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의 길이다. 방법 아닌 방법이며, 길 아닌 길이다. 이것이 바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길이다.

 

위대한 선지식은 곧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보여 줌으로써 자성을 보아 성불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선(禪)이다.

 

선에 대선지식, 스승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스스로 견성하고, 원만하게 보임을 이룬 대선지식을 만나, 직지인심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선지식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수행하라’는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매 순간, 법을 설할 때마다, 일상생활의 한 가운데에서, 언제나 곧바로 마음, 불성, 본래면목을 가리켜 보인다. 

 

제자가 스승에게 “도가 무엇입니까?”, 혹은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을 때, 어떤 스님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임으로써,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마음을, 불성을 가리켜 보여준다. 이것이 곧 직지인심이다.

 

또 어떤 스님은 “할!”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한 대 때리기도 하고, 혹은 “뜰 앞의 잣나무”, “마른 똥막대기”를 말하거나, 혹은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마음을 곧장 확인시켜 준다. 


이런 방편이 모두 불성을 지시해 보이는 것이다. 

 

물론 중생들은 그런 행위나 말을 듣고, 그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거나, 그 행위에 담긴 뜻을 이해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분별이다. 


그렇게 해서는 영겁이 다하도록 노력하더라도 자성의 티끌 하나도 보지 못한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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