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 빠져나올 수 없는 인과라는 수행의 감옥에 사로잡힐 것인가

2026-02-18
조회수 308

d00586d11d911.jpg


세상에는 수많은 수행들, 명상들, 마음치유의 방법들, 깨달음의 방법들이 무수히 많다.


얼마의 돈을 내고, 얼마간의 프로그램에 동참해, 특정한 수행을 열심히 갈고 닦으면, 그 결과 마음의 평화와 자유, 삼매와 깨달음 같은 영적인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꼬드긴다.


어떤 사람은 여기 저기 수행 프로그램 옮겨다니기를 30년도 하고, 50년도 한다.


이 수행법 저 수행법, 이 스승 저 스승을 찾아 쇼핑과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모든 수행법은 '여기(중생)'에서 '저기(깨달음)'로 가는 것을 보장하기 때문에, 참된 불교의 불이중도와는 다르다.


이렇게 수행할 때의 결과는 어떨까?


분명히 이럴 것이다.


어떤 수행법을 시도하고 갈고 닦아 특정한 괴로움이 소멸되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업장이 소멸되고, 풍요롭거나 행복한 상태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신비체험이나 삼매를 얻게 될 수도 있다.


성공했다 싶다.


그 결실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될 것이다.


행복해진다. 영적인 고양과 충만감이 감돈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반드시 그 충만한 영성과 지복감은 사라진다.


반드시 사라지고야 만다.


왜 그럴까?


그것은 과거에는 없던 것이 수행을 통해 새롭게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생사법, 생멸법이기 때문이다.


생겨난 모든 것은 반드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결실, 성과, 깨달음, 열매는 반드시 사라진다.


무엇을 하든, 어떤 수행을 갈고 닦든,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있든, 어떤 스승을 따르든, 여기에 예외는 없다.


무조건 무조건이다.


이걸 계속하겠다고?


언제까지 이 빠져나올 수 없는 인과라는 수행의 감옥에 사로잡힐 것인가?


특정한 체험과 느낌, 상태는 반드시 사라진다.


둘로 나누어 놓고,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것이 물론 상당한 효용과 성과는 분명히 있다.


그것을 위해 헌신하고 투자했다면 좋다.


행복한 상태, 지복감, 마음의 치유, 상처와 트라우마 극복, 삼매 체험 등 많은 좋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왔다가 간다.


왔다가 가지 않는, 불생불멸하는, 늘 있는 것이야말로 참된 진실이다.


구도자들이 이제 멈추고, 불이법의 문으로 들어와야 하는 이유다.



글쓴이:법상

26 3


유튜브/밴드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 이메일 : moktaksori@daum.net문의(서울 총무실장) : 010-3088-8636 | 연말정산 전용 : 010-9700-7811

Copyright ⓒ 2021 목탁소리 All rights reserved.

이용약관  |  개인정보방침찾아오시는 길 후원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