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심은 중생 스스로가 만든 상일 뿐, 진실이 아니다

20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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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봉을 5,000만원을 받는다는 것이 많이 받는 것인지 적게 받는 것인지, 그로인해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정해진 실체일까? 


그 5,000만원 연봉이라는 상(相)은 허망하여 실체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 연봉을 많다고 인식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작다고 인식한다. 


많다고 인식하면서 풍요를 느끼고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고, 작다고 느끼면서 비참해하고 궁핍해하면서 불행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진실할까? 

 

그 연봉 자체에는 많거나 작다는 그 어떤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은 그 중립적인 현실에 자기 식대로 분별하여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면서 행복하거나 불행하다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괴로움이다. 

 

만약 애초부터 그 연봉 5,000만원에는 그 어떤 실체도 없고 진실도 없어서, 분별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그로인해 괴로울 것도 없었을 것이다. 


5,000만원 연봉을 받는 사람이 한 명은 너무 많다며 행복해하고, 또 한 명은 적다고 불행해한다면 그것은 5,000만원에는 정해진 많거나 적음, 부자이거나 가난,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분별된 상을 지닌 모든 대상은 고정된 실체가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진짜라고 여기며 분별한다. 


그 분별은 진실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서 인식되고 분별된 것을 진실이라고 여긴다. 


모든 대상을 좋다거나 싫다, 크다거나 작다, 마음에 든다거나 안 든다, 옳다거나 그르다 등으로 나눈 뒤에, 좋은 것은 취하려고 하고 집착하고, 나쁜 것은 버리려고 하며 거부한다.

 

좋아서 집착하는 것이 내 것이 되지 않을 때도 괴롭고, 싫어서 버리려고 하는 것이 자꾸만 내게 나타나도 괴롭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도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할 때도 괴롭지 않은가? 

 

이처럼 둘로 나누는 분별심을 일으키면 취하거나 버리고자 하는 취사간택심이 생긴다. 


분별심은 곧 취사심이 되고, 취사심은 곧 괴로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별심은 중생 스스로가 만든 상일 뿐, 진실이 아니다. 


분별하지 않고, 분별상에 집착하지 않으며, 취사선택하지 않으면 삶의 모든 괴로움은 사라진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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