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애써 조작함으로써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자 하는가?
2025-08-04
조회수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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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08-04 23:44
글 감사합니다❤️
그 누가 먼 해안가에 서서, 오래전에 사라진 바다 너머의 시공간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꿈꿀 수 있겠는가?
지금 너는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과거의 그림자가 남아 있긴 하지만 현재의 빛이 희미하게 인식된다
일단 그 빛을 보게 되면,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빛은 너를 과거에서 끌어내 네가 실제로 있는 현재에 둘것이다
매일 매 분, 매 분이 간직하고 있는 매 순간,
너는 이제 공포가 사랑으로 대체된 그 한 순간을 다시 살 뿐이다
- A course in Miracles
그 누가 먼 해안가에 서서, 오래전에 사라진 바다 너머의 시공간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꿈꿀 수 있겠는가?
지금 너는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과거의 그림자가 남아 있긴 하지만 현재의 빛이 희미하게 인식된다
일단 그 빛을 보게 되면,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빛은 너를 과거에서 끌어내 네가 실제로 있는 현재에 둘것이다
매일 매 분, 매 분이 간직하고 있는 매 순간,
너는 이제 공포가 사랑으로 대체된 그 한 순간을 다시 살 뿐이다
- A course in Miracles
KK럭키2025-08-04 22:00
현실이 곧 진실, 즉 있는 그대로입니다.
어느날 문득 한 사람이 우리는 모두 중생이야 했습니다.
그러다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이 속아서 우리 모두 중생이야 했습니다.
갈고 닦아야 부처가 된다고 합니다.
다들 아 우리가 중생이고 어리석어 갈고 닦아야 하는구나 했습니다.
어느날 문득 한 사람이 우리는 모두 부처야 했습니다.
그러다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이 속아서 우리 모두 본래 부처야 했습니다.
갈고 닦지 않아도 본래 부처라고 합니다.
다들 아 우리가 본래 지혜를 구족하고 닦을 필요도 없는 부처였구나 합니다.
중생이 즉 부처였군요?
계정혜가 즉 탐진치 였군요?
어리석음이 즉 지혜였군요?
무위법이 즉 유위법이였군요?
쓰레기 같은 인연 가합의 말만 따라갈 것이 아니라
먹다 버린 찌꺼기를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번 즈음 깊이 사유하고 행해보고 검증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느 누구도 결코 그 맛을 대신 알려줄 수 없습니다.
직접 맛을 봐야 합니다.
직접 빛을 봐야 합니다.
그 한 번의 빛이 천년 만년의 어둠을 환히 밝힐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빛이 밖에 따로 있는 걸까요? 찾아야 하는 걸까요?
'자등명 법등명'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어느날 문득 한 사람이 우리는 모두 중생이야 했습니다.
그러다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이 속아서 우리 모두 중생이야 했습니다.
갈고 닦아야 부처가 된다고 합니다.
다들 아 우리가 중생이고 어리석어 갈고 닦아야 하는구나 했습니다.
어느날 문득 한 사람이 우리는 모두 부처야 했습니다.
그러다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이 속아서 우리 모두 본래 부처야 했습니다.
갈고 닦지 않아도 본래 부처라고 합니다.
다들 아 우리가 본래 지혜를 구족하고 닦을 필요도 없는 부처였구나 합니다.
중생이 즉 부처였군요?
계정혜가 즉 탐진치 였군요?
어리석음이 즉 지혜였군요?
무위법이 즉 유위법이였군요?
쓰레기 같은 인연 가합의 말만 따라갈 것이 아니라
먹다 버린 찌꺼기를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번 즈음 깊이 사유하고 행해보고 검증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느 누구도 결코 그 맛을 대신 알려줄 수 없습니다.
직접 맛을 봐야 합니다.
직접 빛을 봐야 합니다.
그 한 번의 빛이 천년 만년의 어둠을 환히 밝힐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빛이 밖에 따로 있는 걸까요? 찾아야 하는 걸까요?
'자등명 법등명'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조작(造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조작하면 생사윤회를 면치 못한다.
나는 이제 이 땅에 와서 오직 돈교(頓敎) 대승(大乘)의 즉심시불(卽心是佛)만을 전할 뿐, 지계(持戒)나 보시(布施), 정진(精進)과 고행(苦行)은 말하지 않는다.
[달마 혈맥론]
그저 간절한 발심(發心)과 스승의 법 아래에 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힘을 쭉 뺀 채 오로지 법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법문 들으라.
그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안에서 우러나와서 저절로 되는 것이다.
저절로 되는 공부가 진짜 힘이 있지, 억지로 하는 공부에는 힘이 없다.
발심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되는 것이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조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조작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억지로 갖추어야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대로, 그대로 두어도 언제나 완전한데, 왜 애써 조작함으로써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자 하는가?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충분히 완전하고,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며, 충분히 괜찮다.
어떤 무언가를 갖추어야지만 더 나아지고, 어떤 것을 이뤄야지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완전하고 충분하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그 어떤 것도 따로 하지 않아도, 지금 이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돈교(頓敎)의 즉심시불(卽心是佛), 즉 곧장 이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전하실 뿐, 지계나 보시, 정진과 고행은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에게 본래부터 있던 것을 드러내실 뿐, 없던 것을 애써서 보시나 지계, 정진과 고행을 통해 만들어 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