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 마음이 늘 앞에 드러나 있지만,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이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과 다르지 않아서, 생기거나 사라진 적이 없다.
생기지도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거나 감소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오지도 가지도 않으며, 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의 모습도 없고, 승속(僧俗)이나 노소(老少)도 없고, 성인도 범부(凡夫)도 없고, 부처도 중생도 없고,
닦아서 깨닫는 것도 없고, 원인도 결과도 없고, 근력도 용모도 없다.
마치 허공과 같아서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고, 산이나 강이나 석벽(石壁)이 가로막을 수도 없다.
나타나고 사라지고 가고 옴에 자재하고 신령스럽게 통한다.
오온(五蘊)의 산을 통과하고 생사의 강을 건너니 어떤 업이라도 이 법신(法身)을 구속할 수 없다.
이 마음은 미묘하여 보기가 어려우니, 이 마음은 색심(色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달마 혈맥론]
‘마음’은 무엇인가?
선에서는 불성, 본래면목, 해탈, 열반, 반야, 참나, 주인공, 법 등을 다른 말로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마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이고 늘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성, 해탈, 열반, 반야 이렇게 표현하면 너무 어렵고 나에게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마음’은 늘 여기에 있고 내가 늘 쓰고 있지 않은가.
이 마음은 늘 눈앞에 드러나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언제나 눈앞에 드러나 있고, 단 한 번도 없어진 적이 없다. 이것은 불생불멸하는 것이기에, 생기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도 없고, 더럽거나 깨끗하지도 않다. 오지도 가지도 않고, 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 노소, 범성(凡聖), 부처와 중생도 아니다. 마치 허공과도 같아서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다.
이 마음은 닦아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 이미 본래 구족되어 있으며,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기 때문에 닦음이나 수행을 통해야지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드러나 있다. 그렇기에 이것은 원인도 결과도 없다.
수행이라는 원인을 제공해야지만 깨달음이라는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법상
본래 마음이 늘 앞에 드러나 있지만,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이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과 다르지 않아서, 생기거나 사라진 적이 없다.
생기지도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거나 감소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오지도 가지도 않으며, 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의 모습도 없고, 승속(僧俗)이나 노소(老少)도 없고, 성인도 범부(凡夫)도 없고, 부처도 중생도 없고,
닦아서 깨닫는 것도 없고, 원인도 결과도 없고, 근력도 용모도 없다.
마치 허공과 같아서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고, 산이나 강이나 석벽(石壁)이 가로막을 수도 없다.
나타나고 사라지고 가고 옴에 자재하고 신령스럽게 통한다.
오온(五蘊)의 산을 통과하고 생사의 강을 건너니 어떤 업이라도 이 법신(法身)을 구속할 수 없다.
이 마음은 미묘하여 보기가 어려우니, 이 마음은 색심(色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달마 혈맥론]
‘마음’은 무엇인가?
선에서는 불성, 본래면목, 해탈, 열반, 반야, 참나, 주인공, 법 등을 다른 말로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마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이고 늘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성, 해탈, 열반, 반야 이렇게 표현하면 너무 어렵고 나에게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마음’은 늘 여기에 있고 내가 늘 쓰고 있지 않은가.
이 마음은 늘 눈앞에 드러나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언제나 눈앞에 드러나 있고, 단 한 번도 없어진 적이 없다. 이것은 불생불멸하는 것이기에, 생기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도 없고, 더럽거나 깨끗하지도 않다. 오지도 가지도 않고, 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 노소, 범성(凡聖), 부처와 중생도 아니다. 마치 허공과도 같아서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다.
이 마음은 닦아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 이미 본래 구족되어 있으며,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기 때문에 닦음이나 수행을 통해야지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드러나 있다. 그렇기에 이것은 원인도 결과도 없다.
수행이라는 원인을 제공해야지만 깨달음이라는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