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중생이 없으면 지혜로운 부처도 없다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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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08-12 23:10
분별심이 중생의 허망한 착각이기 때문에, 그 허망한 착각만 사라지면 될 뿐, 허망한 착각이 사라진 뒤에
또 다른 착각 없는 진여심이 다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글 감사합니다❤️
네가 몸이며, 몸의 눈만이 볼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하는
수많은 마법적인 믿음 가운데 하나다
너는 또한 몸의 뇌가 생각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몸의 눈을 통해 너의 약함은 보여진다
그것은 연약하고 병들어 죽어가고 슬퍼하며 기쁨이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축복할 수도 없는 눈을 통해 보인다
네 안에 있는 하느님의 힘이야말로
네가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빛이다
그것은 네가 하느님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A Course in Miracles
또 다른 착각 없는 진여심이 다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글 감사합니다❤️
네가 몸이며, 몸의 눈만이 볼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하는
수많은 마법적인 믿음 가운데 하나다
너는 또한 몸의 뇌가 생각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몸의 눈을 통해 너의 약함은 보여진다
그것은 연약하고 병들어 죽어가고 슬퍼하며 기쁨이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축복할 수도 없는 눈을 통해 보인다
네 안에 있는 하느님의 힘이야말로
네가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빛이다
그것은 네가 하느님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A Course in Miracles

제자가 화상에게 묻는다.
“마음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답한다.
“마음은 없다”
[달마 무심론]
달마는 ‘마음은 없다’고 했다.
여기에서 ‘마음’은 물론 진여심, 여래심, 본래면목, 자성으로써의 마음이다.
이 여래심이라는 마음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있다거나 없다고 하려면 있거나 없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마음, 본성은 있거나 없는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배경 같은 것일 뿐, 어떤 특정한 대상은 아니다.
달마는 ‘결단코 마음은 없다. 다만 중생이 마음이 있다고 헛되이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중생이 분별심을 일으키면 그 중생의 분별심과 상대적으로 여래의 무분별심도 함께 분별되어 생겨난다.
즉, 분별심이 있으면 무분별심도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처럼 둘로 쪼개서 분별하여 인식하는 것이 우리 중생심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별심이 중생의 허망한 착각이기 때문에, 그 허망한 착각만 사라지면 될 뿐, 허망한 착각이 사라진 뒤에 또 다른 착각 없는 진여심이 다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름만 무분별심(無分別心), 진여심이라고 붙여놓았을 뿐이지, 그런 진여심에 해당되는 무언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없다’고 한 것이다.
여래심, 진여심, 불성, 자성, 본성, 마음이라는 어떤 것이 따로 실체적으로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없다.
중생들이 허망한 분별심을 일으키니까 그것과 상대적으로 무분별심, 진여심이라는 것을 방편으로 설했을 뿐이지, 그 진여심, 마음이라는 것에 해당하는 어떤 실체적 대상은 없다.
다시 말하면, 중생이 중생심으로 인해 괴로워하기 때문에, 그 중생의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를 ‘열반’, ‘부처’, ‘마음’이라고 이름 한 것일 뿐이다.
중생이 있기에 부처도 있고, 생사가 있기에 열반도 생겨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수많은 경전에서는 ‘부처도 열반도 진리도 없다’고 설했다.
중생심이 없으면 진여심도 없다. 어리석은 중생이 없으면 지혜로운 부처도 없다.
글쓴이:법상